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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6 21:06
이대로/자랑스런 아빠(제9회 뿌리문학상 수필 우수상)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309  

이대로(제9회 뿌리문학 수상자)
 

자랑스런 아빠   
 

늦손주 때문에 이사를 오긴 했지만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고 아직도 마치 딴 곳에 여행이라도 와 있는 기분이다. 하기야 이민 와서 한 곳에서37년을 살다가 처음 한 이사이기에 그럴 법도 하다. 이곳 워싱턴주 최남단인 밴쿠버는 전에 살던 ‘렌톤보다 같은 주 인데도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쌔몬크릭(salmon creek)으로 산책을 나왔다. 산책로나 그 주변이 참으로 좋다. 우거진 숲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이 한없이 싱그럽고 빨간 점백이 새들의 요란스러운 지저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며 졸고 있는, 생전 처음 보는 연못 가의 자라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를 뻔히 쳐다보고 서있는 노루가 참 귀엽다. 한 떼의 오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는 연못 한쪽 어느 구석에선가 황소개구리의 늙은 하품소리가 엷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하늘 위에 하얗게 떠오른 마운틴 후드(Mt. Hood)의 삼각형 산꼭대기를 배경으로 한 없이 펼쳐진 갈대 숲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넋이 나간 듯 심취해 있는 동안 문득 고국 생각이 난다.

2년 전 가을 추석 무렵에이민 온 지 처음으로 두 딸 그리고 사위와 함께 온 가족이 고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동안 매스컴을 통해 고국의 변모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상상을 초월한 변화를 직접 보니 차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35년 전의 그것들과 오버랩 되곤 했다. 빨간 민둥산이 그렇게 파란 숲으로 덮여있을 줄이야! 감격의 눈물이 앞을 막았다.

그러나 길을 거꾸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매우 불친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민망함과 불쾌감 그리고 각박하게 변해버린 인정의 아쉬워짐을 되뇌어야만 했고 이민 오기 전 그때 살았던 신장위동 옛집을 찾아보려고 두 번이나 노력해봤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할 때는 참으로 섭섭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저녁상 머리에 둘러앉아서 고향과 나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던 중 이제까지 아이들이 몰랐던 나의 쓰라린 과거를 말하게 되었다

믿기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과거 얘기에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 것들 중에서도 어떻게 우리 가정이 몰락됐는지에 대해서는 같이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다.

625 사변 때 아버지와 할머니를 잃은 우리 집은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많은 전답과 집 등 전 재산은 담 하나 사이 옆집 아재한테 맡아서 관리하게 하였다. 피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집 사이 담은 서너 자나 내어 쌓아졌고 땅도 집도 우리 것이 아니었다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의 적은 인명을 앗아갔고 내부의 적은 재산을 없애버렸다. 적이 아니라 원수였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친척 집을 이곳 저곳 전전하다가 그나마도 여의치 않자 좀 철이 든 나는 단신 상경을 하고 그 때부터 진짜 고생을 하게 된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그게 말같이 쉬운 일인가. 어쩔 수 없이 당하다 보니 사서 한 것이 되는 거지. 남이 알기를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했고 너무나 힘들어서 자살을 고민해 보기도 했다. 산전수전이라 했던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고 자식들 낳아 기르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선조 묘소를 관리하고 있는 조카를 만나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그냥 고향이니까 그리고 아버지와 할머니 산소가 있으니까 찾는 것이지 그리워서는 아니었다. 세상일도 알 수 없고 사람 일도 알 수 없다

그 곳에 그 아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그 사람이 거기에서 우리를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생시이다. 분명히 그 사람이다.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분명히 그 사람이다.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 일행 중에 아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만 알 뿐이다.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났다. 어떻게 이 사람을 대해야 하나?!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조카를 비롯해서 모두 다 반세기만에 만나본다. 그러기에 말보다 눈물이 앞서고 꼬옥 잡은 손은 차마 놓칠세라 더욱 꼬옥 붙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 아재와는 더했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해 묵은 필름이 돌아가다가 끊기고 또 돌아가다가 끊기기를 반복할 때마다 더 많은 눈물이 온 볼을 적셨다.

세월이 빛이 바래서 그랬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겪은 세상 풍파가 퇴색해서 일까, 또는 종교생활의 탓이었을까? 증오와 미움과 원망으로 녹이 슬어있을 내 마음이 왜 그랬었는지 나도 모른다. 용서를 한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단어마저 녹아서 없어져 버렸다그리고 측은한 생각만 들었다

그 아재는 이런 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집안이 원만하지 못하고 지금은 다른 사람 이름이나 지어주며 많은 시간을 낚시로 소일하고 있다는 말에 불쌍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누런 벼들이 산들바람에 춤추듯 출렁이는 황금벌판 한 쪽 구석에 연꽃 잎으로 뒤 덮인 조그만 연못이 있고 거기에 햇볕 가림 천막이 있고 낚싯대가 서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가 내 쉼터지~”할 때는 더 측은한 마음에 코 끝이 찡함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잡히는 대로 용돈에 쓰시라고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우리는 마지막 이별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누구였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아이들은 그러했던 나의 행동에 너무나 의외라는 듯그래 잘했어 아빠,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 참 잘했어, 아빠가 자랑스러워

또 눈물이 난다. 벼 익은 황금물결 한쪽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있을 아재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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