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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02 22:01
공순해/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57  

공순해 수필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내가 맘껏 뜯어먹을 수 있게 나를 구워 준/ 나의 오븐이자 빵이며 우물거리는 입인/ 김연회 아빠, 양은숙 엄마/ 당신들 덕분에 이리 배부른 나입니다.

시 아닌, 이 시는 그 애가 제 첫 시집 첫 장에 올린, 제 부모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이걸 놓고 그 애 아버지는 그때, 형수! 이게 칭찬이유? 욕이유? 내게 물었다. 딸이 시인이 되어 시집을 출간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랴. 한데 칭찬인지 욕인지 구별 안되는, 헌사인지 비난인지 모를 글에 얼마나 황당했으랴. 그 애가 딜런 토마스를 흉내내고 싶었나 보죠. 속으로만 대답하며 나는 그저 웃었다.

자물쇠 단단한 철창 안에서만 잠들 줄 아는 날 내다 팔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포수로 그림자를 갈아 입는다라고, 결혼 재촉을 비켜가는, 서른 일곱이 돼오는 딸이 부모는 얼마나 답답하랴

게다 그 앤 작품 속에서 걸죽한 욕과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시 제목도 매일 매일 놀러 오는 우리 죽은 아빠’, ‘내가 날 잘라 굽고 있는 밤 풍경따위다. 제목만으로 문장을 만들어 보면 고등어 부인이 윙크하고, 문어 머리는 박치기하면서 빛나고, 지렁이 날자 나가 떨어지고, 고슴도치 아가씨는 날아다닌다는 식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딸. 도깨비 놀음 같은 시. 한데 그 애에 대한 한국 시단(詩壇)의 평은 긍정적이다. 솔직한 발성과 역동적인 감각을 지녔으며, 우리말의 리듬을 탁월하게 조율한다고 평가한다

그녀는 힘 있는 변종(變種)이다라는 평자도 있다. 그러니 밖에 나가 칭찬받는 걸로 봐 그게 진짜 시이긴 한가 본데, 영 이해되지 않으니 그 부모는 얼마나 난감하랴.

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말대로 방직공장 반장 출신이다. 그는 YH 사건 때 동일방직에 근무했다. 절망에 떠는 여공들을 본능으로 다둑여주며, 힘을 나눠 주던 반장 아저씨’. 

그의 어머니도 방직공장 출신이다. 어머니가 방직공장에 일하러 가면 그는 어린 여동생 넷을 밥해 먹이며 길렀다. 우리 앞집에 살던 그는 내 시어머니를 이모라 불렀다. 전쟁 뒤의 신산한 삶 속에 이웃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 시절을 넘기며 몸에 밴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그로선 그러니 힘있는 변종인 딸을 이해하긴 아마 능력 밖일 것이다.

애들은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워요. 옛날에 딱지치기 하고 싶을 때, 엄마가 물 길어 오라고 하면 대들고 싶었던 심정, 그 비슷한 거 아니겠어요? 내 말에 그는 허허 웃었다. 하긴 내 친정아버지도 그러셨다. 내가 팔 없는 원피이스를 만들어 입었더니, 돈이 모자라 옷감이 부족했냐? 돈 줄 테니 팔 붙여 입어라, 하셨다.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이해불능이어서, 신구 갈등은 영원히 존속한다. 부모 세대는 도무지 우릴 이해하려 들질 않아. 우리도 과거 이렇게 말했고, 그리 말하던 우리에게 우리 자식들도 그리 불평한다. 왜일까? 이 말을 뒤집으면 세대는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변화, 발전하고 있기에 달라진 점을 이해하기 어렵단 얘기 아닌가. 그러므로 신구(新舊) 갈등은 젊은이들이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변화, 발전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이해 난망인 딸이지만 그 애 아버지는 딸이 길 위의 이야기연재를 맡게 되자, 매일 그 기사를 스크랩했단다. 끝나면 책으로 엮여져 나올 텐데 촌스럽게 뭘 그런 걸 하고 계시냐고 딸이 핀잔(?)을 주자 그는, 이게 아버지 정성이야. 스크랩해서 묶은 걸 네 손에 들려 주고 싶어서, 라고 했단다

그 이메일을 읽는 순간 나는 가슴이 찡해져, 멋진 아버지! 외쳤다. 그는 본능으로 딸과의 매듭 푸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 애가 발칙하게 세상을 찔러도 그런 아버지가 있는 한 그 애는 인성(人性)을 잃진 않으리라. 그건 확신이었다.

자식에게 최대의 힘이자 빽은 부모의 사랑이다. 세련된 사랑이 아닌 촌스럽고 뭉툭한, 믿어주는 사랑. 세상의 난제를 풀어가는 힘도 사랑이고,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도 사랑이다.

그 애의 680자 수다가 이어졌던 올 한 해, 나는 강보에 싸였던 그 애의 기억을 더듬으며 새댁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유쾌했다. 그 가족의 사랑에 마음 또한 따뜻했다. 이제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 할 연말이 되어 유니세프 앞으로 소액 수표를 쓰며, 나는 이도 사랑 표현의 일종이라고 자위한다. 심란한 연말, 한 조각 사랑이라도 없었다면 어찌 살았으랴.

그러기에 세 살 짜리 손녀가 주동이 되어 다섯 살짜리 한 살짜리 손주까지, 유튜브를 틀어 놓고 말춤을 출 때, 말리는 대신 손장단을 치며 그 애들과의 거리를 좁혀 보련다.

**2012년12월14일자 한국일보 게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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