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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15 16:34
[시애틀 수필-장원숙] 황혼의 향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524  

장원숙 시인

황혼의 향기

얼마 전 친구로부터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간직하기에는 너무 로맨틱하고 아까워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갑자기 짬뽕이 먹고 싶어 중국집을 찾아가 주문을 한 뒤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어떤 노신사도 이미 테이블에 놓여 있던 짬뽕을 아주 맛있게 후루룩 먹고 있었다.

그 신사는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속이 확 트입니다. 이제 살 것 같네요”라고 말을 걸어오더니 결국은 보리차 두 잔을 들고 그녀가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고 나선 “요즘 보기 드문 멋쟁이이십니다”라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남자의 말이 진심이었든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빈말이었든 그 친구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녀 역시 그 남자에게 관심이 생겨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니 희끗희끗한 머리와 다정다감하면서도 로맨틱한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낭만을 아는 남자로 느껴졌다.

친구가 짬뽕을 거의 다 먹을 무렵, 앞자리서 지켜보고 있던 그 남자는 “이제 얼큰한 속을 달래러 갑시다”라며 스타벅스로 커피 한잔을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다. 노신사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에게 하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처음 본 남자를 따라 자리까지 옮긴다는 것은 좀 아닌 듯싶어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는데, 그가 다시 제안을 하면서 보인 눈빛이 너무 간절했고 결국 둘은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들은 한 달에 한번씩 만나서 짬뽕을 같이 먹고 시애틀의 상징인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씩을 마시자고 약속한 뒤 헤어졌다고 한다.

그 남자한테 사람의 향기가 풍겼다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설레고 들뜬 마음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친구의 고백을 듣고 난 뒤 어쩐지 그녀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여운으로 남아 나까지도 설렜다.

우리는, 더욱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을 오랫동안 미덕으로 여기고 살아왔는데 그 노신사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져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홀로 태어나 홀로 가야 하는 인생인데 미국까지 이민 와 살고 있는 우리는 외로운 마음도 꽁꽁 숨기며 행복한 척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그런 것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용기를 낸 그 남자분은 역시 매력적인 남자이고 향기를 풍기는 남자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 남자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오랫동안 살아가다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으면서 만난 사람에게 어느 순간 그리움의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기계 문명의 발달로 끊임없이 접속은 하고 있지만, 막상 접촉하기는 주저하고 꺼려한다. 좋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은 어쩌면 생명의 에너지가 될 것인데도 그것을 쉽게 찾을 수 없고 기회를 잡기도 어렵다. 분명 건강한 접촉은 풍요를 주며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우연히 찾아온 친구의 접촉은 참 부럽다.

사실상 황혼이 꿈꾸는 좋은 접촉은 어쩌면 젊은이들에 비해 더욱 절실하다. 살아가야 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짓눌려 몸부림치며 사는 것보다 얼마 남지 않은 황혼일지라도 접촉을 통해 설레며 인간의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관계라면 더 멋진 인생이 아닐까 싶다.

황혼은 2 의 사춘기라고 한다. 이 황금같은 시간을 놓치지 말고 황혼의 향기를 마음껏 품어내며 살아가길 내 스스로에게도 다짐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 친구의 설레는 눈빛을 보며 그 만남이 삶의 촉진제가 된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생명의 등불이 될 수 있는 만남과 접촉도 있는 법이다. 인생은 짧고 외로운 것 같지만 늘그막에도 찾아오는 황혼의 향기로 행복할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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