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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3 11:54
[시애틀 수필-안문자] 거룩한 체험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764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거룩한 체험
 
동네의 꽃 잔치는 막바지 여름을 장식하며 농익은 색깔을 그려내고 있다. 깔깔한 모시 같던 시애틀의 여름이 불 같은 더위를 뿜으며 대지를 달구고 있다

깜짝 놀란 시애틀 사람들이 쩔쩔 매고 잘 생긴 나무들이 이게 웬일이냐고 따가운 잎사귀로 바람을 스친다. 소담스러운 여름 꽃, 지금은 내 차례라고 은근한 색깔로 화사하게 웃던 수국도 풀이 죽었다. 서둘러 물보라에 무지개 피우며 물을 뿌리니 신이 난 꽃들과 나무들의 색이 짙어진다. 순간, 자연의 색이 달라져 보였다던 거룩한 체험의 그 남자가 떠오른다.
 
한 남자가 실의에 빠졌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교회생활은 습관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허전함을 채우려고 새벽기도를 위시해서 온갖 예배는 빠지지 않았고 다른 교회 부흥회에도 찾아 다녔다. 숱한 설교를 들었지만 모두가 거짓이라고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교회에서 싸움이 일어나고부터다. 두 쪽으로 갈라져 원수같이 으르렁거리는 모습들을 보며 신앙이란 무엇인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절망 속에서 길거리를 방황하던 그가 배가 고파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한가했다. 주문을 하고 멍하게 앉아 있는데 사르르 문이 열렸다. 한 초라한 할머니가 고개를 쑥 내밀며, “나물 좀 사.” 하며 눈치를 본다. 주인 아줌마, 퉁명스럽게 “안-!” 톡 쏜다

아니, 저 불쌍한 할머니에게 젊은 아줌마가 너무 하잖아? 남자는 마뜩찮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 때 퉁명 아줌마 소리친다. “밥은 먹었어? 들어와 밥 먹고 가.” 어라? 이건 또 뭐야? 남자는 호기심에 차 여인들을 바라본다. 기운 없는 할머니는 맥없이 주춤댄다

“어서 들어 오우.” 좀 부드러워졌다. 할머니, 비실거리며 구석에 앉는다. 어느새 남자의 앞에도 밥이 왔지만 숟가락을 들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퉁명 아줌마,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 고봉의 밥그릇을 나물할머니 앞에 탕 놓고 뜨끈뜨끈한 고깃국도 탕 하고 놓는다. 여러 가지의 반찬들도 탕탕 놓여진다. 퉁명 얼굴에 가는 미소가 번진다. 할머니는 허겁지겁 먹고 퉁명 아줌마는 자꾸만 바라본다. 뭐 더 내 놓을 게 있나? 하는 것처럼.

전혀 뜻밖이다. 밥 먹을 것도 잊어버리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눈가가 젖어왔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가슴까지 뜨거워지다니. 이런 감격은 생전 처음이다

그래, 교회 안에서 부르짖는 사랑보다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전해오는 사랑이 더 생명력 있고 감동적인 것을. 밥은 먹지 못했는데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계속 눈물이 흘렀지만 알 수 없는 기쁨이 가슴에서 솟아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깜작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뜨거운 가슴을 안은 채 음식점을 나왔다. 이상하다. 좀 전에는 보이지 않던 온 세상의 것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지기 시작 했다지. 햇빛은 찬란하고 나무 잎은 더 푸르렀다. 꽃들의 색깔이 말 할 수 없이 선명했고 빛이 났다

한껏 무르익은 계절이 와 있었구나. 쓰레기통도 다정하게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싶더란다. 모든 게 사랑스럽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과 재물, 이때까지 누리고 있던 풍성함이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졌다. 오늘 다시 세례를 받은 것 같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고 했다.

, 그 남자는 그로부터 생각과 마음이, 정신이 달라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도 가슴이 찡한 감동이 일었다. 거룩한 체험이란 애끓는 심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느낄 수 있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자연 속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아낌없이 함께 나누는 생활 속에서, 작은 일에 기뻐하며 감동이 올때, 눈물이 핑돌며 모두가 고마워지는 마음이 솟구쳐 지는 것. 그것이 거룩한 체험이라고.

계절이 바뀔 때까지 교회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신앙생활에도 모든 것들이 안개 속에 갇혀 길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알게 모르게 스쳐간 순간의 기회에서 거룩한 체험이 손짓하고 있었건만 세상을 걸어가고 있던 나는 모른 체 나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아까운 세월만 의미 없이 허비하고 있는 사이 계절의 질서는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머지않아 서늘한 가을빛을 한 몸에 받으며 익어갈 열매들은 감사하다며 달콤한 고개를 숙일 테고 준비를 마친 나무들은 가을을 마중하고 있을 테다

나도 조용히 머리 숙이며 때묻은 먼지를 털어 내야지. 황폐한 내 마음에 꽃을 심어 주고 영원한 약속으로 열매 맺기를 기다려준 신비한 힘이 내 주위를 감돌고 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있다고, 나는 아니라고, 모는 게 못 마땅하다고 투덜대는 너의 태도에도 거룩한 체험이 필요하다고 가을을 품은 8월의 바람이 조용히 속삭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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