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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23 17:35
[시애틀 수필-안문자] 어머니의 생선냄비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862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어머니의 생선냄비
 
꽃잎들이 봄비에 젖어 누웠다

햇볕을 받은 하얀 꽃잎은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생선 토막을 흐르는 물로 씻는다. 생선은 다듬기가 싫어서 말이야, 손의 비릿내를 씻으며 푸념이 나온다생선은 손질하기도 싫지만 조리는 건 더 어렵다

맞아, 조림은 엄마가 맛있게 하셨지. 순간, 어머니가 가르쳐주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문자야, 해 보거라. 냄비에 기름을 슬슬 묻힌 후, 무를 깔고 생선토막을 무위에 가지런히, 요렇게. 고추장에 갖은 양념을 넣고 잘 풀어서 이렇게 살살 붓는단다. 생선이 부르르 끓으면 타지 않게 얼른 불을 낮추어야 돼. 자박자박하게 끓고 있는 생선위로 국물을 떠서 살살 뿌려. 양념이 고르게 배도록.’ 곁에 계시는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

나는 언제나 생선이 탈것 같아서 중간에 물을 붓곤 한다. 조림은 실패다. 조림인지 찌개인지. 쿡쿡, 웃음이 나네. , 어머니의 생선냄비! 요리솜씨 없는 칠칠치 못한 딸에게서 잘 얻어먹지 못하는 사위를 위해서일 게다. 조그만 냄비에 생선조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서 갖다 주곤 하셨지.

물론 아래 이층에, 또는 한 마당 같은 이웃에 살 때다. ‘먹을 때 한 번 더 부르르 끓여서 먹어라.’ 퇴근하여 오늘은 무얼 먹지? 부엌에서 기웃댈 때 어머니가 환히 웃으며 냄비를 들고 오셨잖아. 얼마나 좋았고,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가슴이 찡해온다.

 
며칠 전에 어머니의 8주기를 맞았다. 카네이선을 비석 앞에 꽂으며 형제들은 저마다 어머니와의 추억 속에 잠긴 듯 슬프게 웃었다.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세월이 가도 희석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음식뿐 아니라 바느질 솜씨도 좋았다. 아버지의 바지저고리는 물론 두루마기까지. 블라우스, 원피스 남동생들의 신사복까지 다 만들어 입히셨다. 피난시절, 초록색이었지. 구제품을 뜯어서 오글오글 주름 넣은 원피스에 머리에 리본까지 꽂아주어 나를 즐겁게 해주셨다

신이 나서 학교에 갔더니 남자애들이 놀려댔다. ‘양~색시, ~색시~.’ 울면서 집에 온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머리를 묻었다.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오시곤 놀림은 두 번 다시없었고 팔랑대던 리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머니는 내가 좋다는 건 다 해주셨다

쇠덩어리에 숯불을 넣고 꼬부리는 파마머리, 허리가 날씬하게 들어가는 스웨터, 인조견이지만 빨간 치마에 반 호장 저고리, 나비모양의 머리핀과 방울 반지까지. 어릴 때 해주셨던 오만가지 예쁜 것들을 늙어가는 딸들과 며느리들에게도 계속 주고 싶어 하셨다. 예쁜 그릇이나 컵, 꽃병, 조그만 바구니들…. , 귀여우셨던 우리 어머니.
 

어머니 날은 쓸쓸하다.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서 카드도 오고 전화도 받지만 어머니에게는 비석 앞에 꽃을 바치는 것 밖에 할 게 없다. 어머니는 몇 십 년 동안 형제들과 손주들에게 받았던 카드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어느 날, 언니와 나는 들어 올리기도 힘든 무거운 박스를 열고 이 카드들을 어쩌지? 만지작거리다가 주저앉아 읽기 시작했다. 카드의 꽃들이 너무 예쁘고 사연들은 눈물겹게 재미있었다. 우리는 깔깔깔 웃기도 훌쩍거리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그 많은 카드들을 다 읽고야 일어섰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주신 카드들도 우리는 버리지 못한다. 꼬부랑 글씨로 가득 쓴 사연들은 옆에서 자근자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사랑이 담긴 지폐는 기념일마다, 어른 아이 구별 없이 똑같은 금액이다. 이젠 받을 수 없고 드릴 수 없는 따뜻한 추억일 뿐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조그만 냄비에 얌전하게 담겨있던 생선조림! 토막 위에 파와 마늘, 당근으로 예쁘게 고명까지 얹혀 있었다. 그때는 너무 좋아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코끝이 쓰리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에게 갖다 드려야 마땅한 일인 것을. 그뿐인가 미국에서도 김장철이면 몇 박스의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 이 집 저 집 나누어 주셨다. 나이가 많이 드셨을 땐 ‘이젠 할 수가 없구나’하며 섭섭해 하셨다. 솜씨 좋은 며느리들이 해다 드렸다. 주고, 주고 또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 깊고 높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오늘도 생선을 다듬다가 어머니의 생선 냄비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행복과 감사는 같은 뜻이 아닐는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행복하다는 것은 감사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겠다. 어머니는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자식들을 위한 기도는 또 어찌 가늠하랴. 하늘보다 높은 사랑, 바다보다 깊은 사랑을 주셨던 우리 엄마! 어머니로 인한 행복은 감사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고등어를 무가 담긴 냄비에 정성스레 담는다. 오늘은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대로 자박자박하게 조려봐야지. 어머니의 생선냄비를 닮아보려고 빨갛고 노란 야채도 다듬는다. ‘그렇지, 맛있게 잘 조려 보거라.’ 미소가 담긴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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