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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02 13:09
[시애틀 수필-이한칠] 미역국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890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미역국

 
간 큰 남자,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이미 은퇴하여 집에 머물게 된 친구들이 겪고 있는 일들을 농담 삼아 귀띔해준다. 그들의 경험을 듣다 보면, 내게 다가올 일들로 여겨져 두루 생각해 볼 만한 일인 것 같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이 참에 큰맘 먹고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미역을 물에 불렸다. 두툼한 광어 네 토막을 물에 넣고 끓였더니 뿌옇게 국물이 우러난다. 그 국물에 불린 미역을 넣고 다시 끓였다. 간을 하고 나니 미역국 맛이 제대로 난다.

보글보글 끓는 광어 국물과 만나자마자 대번에 흐물거리는 미역의 모습이 맥없다. 맛으로
경쟁하겠다는 매무새 같지만, 잠깐이라도 파릇하게 살아있는 제 모습을 보기 원했던 내 마음이 겸연쩍다. 순간 뽀얀 국물과 금세 어우러져 슬금슬금 녹아 드는 모습이 슬겁다.

삶은 달걀을 닮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슬쩍 건드려도 깨지는 나약한 달걀이 어떤 역경-
뜨거운 물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속성을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나는 왠지 그 역경에서 더
단단해지는 달걀보다, 맥없어 보여도 재지 않고 자신을 녹이는 미역의 속성이 더 맘에 든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본인이 이룬 결과를 모두가 이뤄낸 공으로 돌리곤 하는 마음 씀씀이가 웅숭깊다. 앞다투어 남을 앞지르지도 않는다

언뜻 손해 보기 쉬운 성품이다. 달리는 사람과 비교되어 걸어가는 모양새이니 남들 눈에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어우르는 힘을 가진 그를 보면서,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생각난다. 자기 홍보시대인 요즘, 좋은 일에 자신을 내세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손익을 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가 드니, 그 손익의 차이가 참 미미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셈하지 않고 모르는 척 어우러져도 큰 탈이 날 확률은 미력하다고 할까.

나의 어머니는 첫 아이를 낳은 막내며느리의 삼칠일 동안의 산후 구완을 자청하셨다. 아내는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로부터 받을 구완이 편하지 않았던지 극구 사양했다

그것을 아시고‘산모는 누구보다 상전(上典)이란다, 우리 집안의 귀한 새 생명을 출산했으니 대접받을 만하다.’라고 하셨다. , 마침 5 8일에 태어난 손녀가 어머니 날의 큰 선물이라 하시며 자청한 당신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큰 솥에 봄도다리와 광어를 번갈아 가며 넣어 푹 끓인 어머니의 미역국은 불편해하던 아내의 마음을 편안하게 녹여 준 것 같았다. 다섯 끼니로 시작해 차츰 세 끼니로 시간 맞춰, 며느리에게 미역국을 차려 주시는 어머니의 정성은 내가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여섯 며느리에게 원칙을 강조하시는 단호한 분이셨지만, 하고자 하신 것은 푹 퍼진 미역국처럼 며느리에게도 푸근하게 베푸시는 분이셨다. 막내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쭉 소탈한 소통해온 것을 보면, 아마 삼칠일 동안의 그 미역국 덕이었지 싶다.

몇 년 전, 작은 아이가 변호사 시험(Bar Exam)에 합격한 뒤였다. 생일을 맞이해 미역국이 등장했다. 그제야 미국에 온 뒤, 생일에도 해물 국으로 미역국을 대신했던 것을 알아차렸다

아내의 말인즉슨, 고등학생인 아이들과 미국에 오자마자부터 큰아이와 작은아이에게 매번 크고 작은 시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시작으로, 대학입시, 전문직 시험 등이 이어졌다

이제야 두 아이가 학업을 다 마쳤으니 미역국을 등장시켰노라고 했다. 재미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해서는 터무니없는 속설도 무시하지 않은 평범한 엄마의 민낯을 보았다. 아내의 그 민낯에서 나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낯설지 않았다.       

남자가 은퇴한 뒤, 아내의 일방적인 대접만 기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부부의 시간을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지 싶다. 미역국을 끓여 본 것을 계기로, 요리 연습을 슬슬 시도해 봐야겠다. 그 시기에는 더욱더 서로의 정감 있는 사랑을 요리와 함께 나누면서 간 큰 남자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서로 주고받는 것, 기대고 바쳐 주는 것, 그렇게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 비단 부부에게만 해당할까.

푹 끓인 미역국처럼 함께 어우러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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