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다양한 물건들
시대를 함께 사는 절반의 한국여성에게 권해
책 제목이 삼류영화의 제목처럼 자극적이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하고 명지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던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책으로도 익히 알려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이 책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일본에서 1년간 홀로 지내면서 외로움과 지겨움을 달래는 사이에 쓰게 된 글이라고 소개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김정운이 대한민국의 남자들을 위해, 남자들 심리에 대해 쓴 글들로 엮어져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 겪는 뜻밖의 외로움과 상실감 등으로 우울증을
겪기도 하며 정신적으로 매우 힘겨운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아이폰과 룸살롱에 열광하는 중년 아저씨들의 심리학적 이유를 저자는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의 대리만족인 ‘터치’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재미난 해석을 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 중년의 무게 때문에 지친 한국 아저씨들에게 연민의 정이 서서히 들기도 했고, 그들에 대해 이해가 조금씩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남자의 물건’을 다루는데 여러 분야의 대표적인 대한민국 남자 10 명을 찾아 저자 김정운이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어령에서부터 차범근, 문재인, 안성기, 조영남, 김문수 등등. 그들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다양한 물건들이 두루 소개된다.
현 한국사회의 문제를 한국 남자의 문제로 해석해 보려는 김정운은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처럼 자신에 관해 이야기할 거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자의 물건을 찾아 나선 저자는 물건들 속에서 남자들이 어떻게 존재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이루고 살아가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책상, 바둑판, 스케치북, 안경, 수첩, 면도기 등에 이르는 남자의 물건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남자들에 관한 속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이 물건 찾기에 자못 공감이 간다. 최근 들어 오래된 빈티지 자동차에 전에 없던 열정을 쏟으며 책을 뒤적거리는 남편을
보면서, 중년의 나이에 공허함을 대신 메우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오던 참이었다.
인생의 중턱에 서면 그 동안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고 누구나 한 번쯤은 잃어버렸던 존재감을 다시 찾고자
하는 생각으로 몸부림치는 순간이 오는 것일까?
빈티지 자동차라는 ‘남자의 물건’ 때문에, 확실히 남편의 말수가 늘어나고 얼굴에
생기가 되
살아난 것을 확인한다. 남자들에게 물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그래서 고개가
자연히 끄덕여지는 이유이다.
무언가에 마음을 쏟을 정도로 관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 남성들의 물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절반의 한국여성들에게 『남자의 물건』을 권한다.
[이 게시물은 시애틀N님에 의해 2013-08-01 08:42:24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