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성추행' 교수 사표 수리…서울대 K 교수는 '사표 수리' 번복
사표 수리되면 교원 재임용·퇴직금 등 제한 없어…학내 조사도 중단
국공립대 교수는 조사 끝나기 전 사표 수리 안 돼…규정 마련 시급
사립대 내에서 발생하는 성추행 관련 교수에 대해 학교 측이 손쉽게 내리는 '사표 수리' 결정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고려대 공과대학 이모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학내 양성평등센터 등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학교 본부 측이 해당 교수에 대해 '해임'이나 '파면' 결정이 아닌 '사표 수리' 결정을 내렸고 경찰에서는 성추행 등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반해 국공립대 교수의 경우는 사립대 교수와 달리 수사기관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사표를 수리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고려대 본부는 같은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이 교수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해 지난달 26일 최종적으로 면직 결정을 내렸다고 같은 달 28일 밝혔다.
고려대 본부 측은 그 근거로 "제출된 사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제시했다.
앞서 서울대 본부도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검찰수사를 받는 데에 이어 서울대 학생 다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학내 인권센터의 조사까지 받게 된 K교수 사건과 관련해 제출된 사표를 수리해 면직하기로 결정했다고 같은 달 27일 밝힌 바 있다.
서울대 본부도 역시 사표를 수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고려대 본부와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또 김병문 서울대 교무처장은 "법무팀에 자문을 구한 결과 교수가 사표를 제출했을 때 학교 측이 이를 거부할 재량권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답변이 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K교수는 지난 2012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공무원이 아닌 사립학교 교원으로 신분이 전환돼 이 교수와 마찬가지로 사립학교 교원과 관련된 법리의 적용을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학교의 징계절차가 진행되기도 전에 의원면직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두 교수는 타 대학에의 재취업이나 연금·퇴직금 수령 등에 있어서 사실상 제한을 받지 않게 돼 논란이 일었다. 즉 각 대학 본부가 교수를 감싸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두 교수 모두 해당 대학의 교원 신분이 아니게 된 만큼 학교 차원의 진상조사도 중단 수순에 놓이게 돼 피해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대 본부 측은 지난 1일 기존 입장을 뒤집고 K교수가 낸 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학내 인권센터의 추행사건 진상조사도 역시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K교수도 사립대학 교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서울대 본부 측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낼 경우 서울대 본부 측이 패소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K교수가 낸 사표가 법원 판결을 통해 인정될 경우 학내 진상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징계는 모두 무효가 된다.
사립대 교수에 대해서도 수사기관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사표 수리를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공립대 교수들과 형평성도 문제가 된다.
현행 '비위 공직자의 의원면직 처리 제한에 관한 규정'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가공무원의 경우 사표를 제출해도 이를 수리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국공립대 교수들은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즉 학교 본부는 원칙적으로 수사가 끝날 때까지 교수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
서울대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서울대는 지난 2012년 법인화 이후 교육부 파견 공무원으로서 신분을 가진 교수들과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신분을 가진 교수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중 공무원의 신분을 가진 교수들의 경우 위 규정의 적용을 받아 사표 수리에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K교수처럼 사립학교 교원으로 신분이 전환된 교수들은 사표 수리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변론을 주로 맡고 있는 이모(31) 변호사는 "사립대 교수들의 경우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사표가 수리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그렇지 않으면 성추행 혐의나 의혹이 인정된 교수들이 다시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이 대부분 해당 교수가 가르치는 대학원생이나 학부생들이라는 '교수 성추행 사건'의 특성을 생각하면 문제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혐의를 인정해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사표를 아예 수리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할 가능성은 열어두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