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헬렌스를 방문했던 것은 한국에서 관광차 들어왔던 1992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화산 폭발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지금보다 더 당시의 상황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화산이란 용어 자체를 책을 통해서만 보고 들었던 처지라 직접 화산이 폭발했던 산을 본다는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다. 오늘은 이곳을 사진모임 회원들과 찾아가 보기로 했다.
헬렌을 찾는 길을 모두 3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수차례 방문을 했던 산이다. 늘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잠깐 잠깐 보고 내려오는 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방문 했을때의 감동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게 늘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헬렌을 방문하는 길은 3곳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입구는 서쪽 입구다. I-5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Exit 49로 나와 504번 도로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곳은 방문센터가 크게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폭발 당시의 상황과 자료를 보여주는 곳이지만 주변 풍경은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많이 희석되고 복원돼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기엔 조금 무리인 곳이다.
하지만 가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쉬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해 헬렌을 방문한다.
또 다른 입구는 남쪽에서 들어가는 방법으로 Exit 21로 나가 503번 도로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 입구는 동쪽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타코마에서 출발하면 7번 도로로 가다 12번 도로로 들어가 25번 도로로 나가면 된다. 다시 말해 레이니어 파라다이스 방향으로 가다 중간에 25번 도로로 들어가면 나온다.
내가 처음 방문 했을 때 간곳은 동쪽 출입구였다. 처음 대한 동쪽입구에서 본 헬렌의 모습은 나에겐 상당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다소 늦게 도착해서 자세히 보고 오진 못했지만 잠깐 동안 본 헬렌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미국으로 이민와서도 늘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남쪽 입구로는 한 번도 못가봤다. 어떤 모습으로 반겨줄 지 그것도 궁금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선 시간 관계상 가보질 못했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가보는 것으로 하고 자주 가는 서쪽 입구가 아닌 늘 가보고 싶었던 동쪽 입구로 방향을 잡아 본다.
겨울엔 많은 눈으로 입구가 막히지만 여름엔 항상 오픈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그동안 몇 번 방문을 시도해봤던 출입구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해동기만 되면 눈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대형 산사태로 입구로 들어가는 곳의 다리가 무너져 매번 돌아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행스럽게도 입구가 열려 들어갈 수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와 무너져 내린 흙들이 당시 상황 짐작케
다리 입구에 가보니 산사태의 상황이 상상 이상이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와 무너져 내린 흙들이 그때 상황을 가늠케해줬다.
다리는 가교로 만들어 놓았다. 새로 만들어놓으면 매번 유실되는 바람에 그냥 가교로 해놓은 듯 하다. 다리를 통과한 후 한참을 올라갔다. 주변 분위기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30년 전의 아픔이 여기 저기 남아있다.
새로 자란 나무 사이로 당시 열기에 타버린 고사목들이 사이사이에 꽤 많이 남아있다. 사진을 찍는 우리에겐 정말 좋은 대상이지만 당시에 아픔이 조금은 느껴지는 풍경들이었다.
올라가는 중간 중간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들이 나왔다. 우린 그냥 통과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Windy Ridge까지 올라갔다. 넓은 파킹장이 나왔다.
이름 그대로 바람이 정말 시원하게 불어온다. 청명한 하늘과 둥실둥실 떠있는 풍경이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이다.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촬영 준비를 했다. 파킹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헬렌의 위용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가파른 언덕에 상당히 많은 계단이 하늘 끝까지 올라갈듯 만들어져 있다.
헬렌의 높이가 8,336피트이고 우리가 있는 windy ridge는 그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다. 산 정상엔 눈은 다녹아 없는데 분화구 주변엔 많은 구름들이 들어차 있어 마치 분화구에서 연기가 나는 듯 보인다.
정해진 코스 이외엔 밟으면 안된다
우린 신발 끈을 동여매고 계단을 오를 준비를 했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헬렌 산은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해진 코스 이외엔 밟으면 안 된다. 코스 밖으로 나가면 벌금 100달러를 내야 한단다.
자연을 보호하고 자생력을 키워주는 차원이지만 촬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선 조금은 불편한 조건이었다. 그래도 그 룰을 따라야 한다. 가급적이면 정해진 코스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아쉽지만 결심을 한다.
계단의 숫자는 세어 보진 않았지만 정말 무수히 많은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자잘한 돌로 된 언덕이라 계단이 없으면 올라가기 힘든 지형인데 계단 덕분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이 공원의 입장료는 5달러이다. 매표소가 따로 있는건 아니고 각자가 알아서 봉투에 담아 넣어야 한다. National forest 정기 쿠폰을 갖고 있으면 별도로 입장료를 낼 필요는 없다. 한참을 올라가니 정상이 나왔다. 뻥뚫린 사방이 기분마저 상쾌하게 한다.
맑은 날 찾으니 레이니어, 아담스, 후드까지 보였다
날씨가 맑고 깨끗해서 그런지 사방에 포진하고 있는 유명산들이 다 보인다.
제일 먼저 레이니어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옆으로 아담스 정상도 보이고 멀리는 오레곤의 마운틴 후드까지 희미하지만 보인다.
산 아래로는 헬렌의 계곡과 그 아래로 이름 모름 폭포가 아련하게 보인다. 멀리서도 그 위용이 대단해 보이는 폭포는 마치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장기 한판 두고있는 듯한 분위기로 우리를 유혹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는 트레일도 있다고 한다. 왕복 7-8마일 코스니 가벼운 코스는 아닐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시도해 볼 작정이다.
정상에선 보면 서쪽 입구로 들어가면 보이는 방문센터도 손에 잡힐 듯 앞에 있고 우측으론 Spirit Lake가 수 많은 고사목을 껴안고 있다. 꽤 넓은 호수의 3분의1 정도가 고사목으로 빼곡하다. 바람의 영향인지 모든 나무들이 동쪽 호수가로 다 모여 빈틈없이 차있다. 당시의 굉장했던 상황을 예상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언덕으로 좁은 오솔길이 계속 이어진다. 수 많은 야생화들이 환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군데군데 여러 형태로 누워있는 고사목들은 아픈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멋을 풍기며 우리에게 멋진 포즈를 취해 준다.
조금 가다보니 호수 아랫부분이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어느정도 가다 거의 비슷한 코스라 돌아 나왔다. 다음 코스로 이동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헬렌의 모습을 사진을 정확하게 담긴 어려워
헬렌의 모습은 정확하게 담을 수가 없었다. 사진 상으로 말하면 계속 태양을 끼고 있는 역광 형태라 아주 늦은 오후라든가 아침 일찍 아니면 선명한 자태를 담지 못하는 각도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계단의 폭이 넓어서 그런지 내려오는 길이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다. 그래도 계단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다 내려왔다.
다시 한 번 재정비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Spirit 호수로 내려가기 위해 차를 타고 다시 내려갔다. 조금 가다 주차장이 나와 차를 세웠다. 위에서 보니 그리 먼 길은 아닌 듯 했다. 카메라 가방을 둘러 메고 내려갔다. 조그만 오솔길이 만들어져 내려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없는 이유를 뒤에 알았다
중간 중간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런데 하나 같이 웃는 얼굴들이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코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산길은 다 내려왔다.
호수로 이어지는 넓은 평지를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고사목은 물론 새로 자란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생명이 가득한 산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연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을 새삼스럽게 하면서 호수 앞에 까지 왔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너무도 어마어마해 어떻게 정리를 해서 담아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아래서 보니 호수 전체에 나무가 있는 듯했다. 너무 많은 나무들이 빼곡히 있다 보니 그냥 나무위로 걸어가고 뛰어 다녀도 빠질것 같지 않았다. 정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꽉차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썩지도 않고 나무들의 색이 회색이라기보다는 흰색에 가깝게 퇴색된 형태로 자신들만의 멋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 정리를 해서 카메라에 담아야 했기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럭저럭 담았다.
모든 대상을 한두 번 보는 것으론 자신이 원하는 표현이 안 된다는건 누구보다 잘아는 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좀 더 잘 정리할 수 있겠지 하는 위안을 하고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평지를 지나 언덕을 오르는 길이 나왔다. 근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웬만한 산길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조금 있고 간혹 평지도 나와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짧은 길이지만 계속 오르막만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쳐 메고 원수 같은 삼각대를 들고 오르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운동 부족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아까 내려올때 만났던 사람들이 웃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30분 정도의 거리를 이렇게 힘들게 올라온건 처음인 듯 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찾을 터
주차장에 도착해 가방을 풀어놓고 크게 숨을 몰아쉰다. 상쾌한 바람이 순식간에 땀을 씻겨준다. 조금은 힘들고 무리한 일정인 듯했지만 그토록 벼르고 벼렸던 헬렌의 모습을 완벽하진 않지만 담았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했다. 20여 년 전에 보았던 감동과 흥분이 다시 살아났던 즐거움도 있었다.
여행에 끝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