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숙 시인(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사람 괴물
요즘 ‘괴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것도 진짜 괴물이 아니라 ‘사람
괴물’을 말이다.
어떤 유명 시인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도 후배 시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자가 괴물이었다니!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만도 못한 행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되고, 더욱이 요즘 언론에서 보면 그런 ‘사람 괴물’들을 잇따라 보게 된다.
돈으로 권력으로 명예로 갑질을 하며 사람이 사람을 능욕하고 빼앗아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했던
자들이 이번 ‘미투(Me too)운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명 시인, 유명 극작가,
유명 교수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자기들의 위치를 이용해 자라나는 후배와 제자들을 자기 처소로 불러들여 안마를 하게 하고 성추행, 성폭행을 일삼으며 먹잇감으로 만들었으니 구역질이 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듯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사람이라고들 한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고, 질투를 하고, 시기를 하며, 모략을 하다가는 끝내는 죽이기까지 한다.
옛말에 ‘짐승이 지나간 자리는 훈김이 돌지만,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냉랭한 살기가 돈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괴물 같은 사람의 본성을 언론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주변에서도 늘 확인하는 뒷맛이 씁쓸하다. 앞에서는 위로하는 척 웃으며, 뒤에서는 돌을 던지며 칼을 꽂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명구 가운데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말이 옛말이 되고 말았다. ‘기쁨을 잘못 나누면 질투로 돌아와 몇 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슬픔을 잘못 나누면 세상에서 매장되는 고통을 겪는다’는 말로 바뀌었단다.
하기야 몇 십 년을 같이 살고 있는 부부도 서로를 배신하며 사는 세상이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셨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아 넘겨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듯이, 온갖 희생으로 키웠건만 자기가 살만하면 부모를 배신하는 자식도 숱하게 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위로를
받고,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왔으며 그러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가장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연약함과 나약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기대나 의지를 벗어나기 위해 조물주를 믿고 따른다.
어이가 없지만 믿는 자들 가운데도 위선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저주하고, 정죄하면서 살고 있는 크리스천도 넘쳐난다. 크리스천뿐 아니라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는
그럴싸하지만 삶의 방식은 ‘괴물’을 연상케 하는 사람도 주변에
숱하다.
목사님은 설교한대로, 의사는 환자들에게 지시한대로, 글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쓴 대로 살아가면 좋겠다. 글 쓰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정서와 영혼까지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순수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