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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7 23:10
공순해/6월의 늪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309  

공순해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6월의 늪
                                                                                

뉴욕 브루클린 에비뉴 S 선상, 데이비드 부디 중학교 국기게양대 곁엔 작은 대리석판이 하나 있다. 9.11때 소방관으로 희생된 동문을 기리는 기념판이다. 그것이 헌정되던 날, 전교생이 헌화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용감한 선배의 희생에 서로 얼싸 안고 오열을 삼키던 그들.

그때 희생자들은 우리 이웃이었다. 가게 단골인 캐롯의 사위, 필립의 아들, 등등. 별안간의 비극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사망자 152, 실종 4,972. 언론에서 보도한 희생자들의 숫자다.  

그때 사망자들도 안타까웠지만 더 안타까웠던 사람들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가족들이었다. 우리 집 블럭의 중국인은 딸의 인상착의를 벽보로 만들어 내걸었다. 혹시 마지막 본 사람 있느냐고.
  
그녀의 귀환을 위해 집집마다 촛불을 켰지만 그건 일 주일 정도였다. 벽보를 내건 집에서는 석 달쯤 촛불을 켰다. 그러나 종래는 쓸쓸하게 불이 꺼지고 말았다. 하지만 실종된 그녀의  부모 가슴에 그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남았으리라. 꺼지지 않는 안타까움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는 비극은 역사 속에서 늘 반복된다. 사망자 165, 행불자76명의 희생을 가져 온 비극. 그것도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에 의해. 적이 적 다우면 오히려 분노하기 괴롭지 않다. 적이 될 수 없는 대상이 적이 되었을 때의 분노란 참으로 복잡하다

그때 잊을 수 없었던 일이 있다. 남편이 출국하고 사흘만에 일어난 그 일. 그러기에 남편 친구들 누구나 그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데 그 한 달쯤 뒤 남편 앞으로 편지가 왔다. 남편 친구는 편지 두 장에 걸쳐 말했다.

어머니 모시고 잘 지내고 있겠지? (중략) 이번 소요 사태는 불순분자가 개입돼 일어난 비극이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질서를 회복시키고 시민 안정에 힘쓰고 있다. 이 진실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

공무원이기는 하지만 행정과는 거리가 먼 식약청, 게다 연구원이었던 그가 집에 없는 줄 아는 친구에게 왜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남편 대신 편지를 읽으며 의심이 가득 일었다. 조작된 진실의 냄새가 썩은 생선처럼 심하게 풍기는 편지에서, ! 이번 사태는 분명 정부가 개입한 거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관계도 없는 공무원들까지 동원해 민심 안정의 편지를 강제로 쓰게 하는 거구나. 정부가 개입돼 있단 증거는 이 편지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그 정부의 주체였던 그 가해자들은 지금껏 사과할 줄 모른다.

그로 해 30여 년이 지난 지금, 165명의 유가족은 그들의 묘역에라도 갈 수 있지만, 그러나 나머지 76명 가족은 갈 곳도 없이 바람에라도 그들의 소식을 묻고 듣고 싶어한다. 생생한 상처와 함께.

내 집에도 이런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남편의 두 형님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신을 확인한 둘째 형님과 달리 큰 형님은 기록상 전사다. 북한군과의 첫번 째 전투를 치른 부대에 배속되어 있었기에 전사로 추정할 뿐, 정확히 말하면 실종이다. 그랬기에 남편은 늘 형님 등에 업혀 갔던 애관극장, 만국공원, 용동 큰우물을 회상하며 생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어머님도 돌아가실 때까지 35년 간 아드님을 기다리셨다. 생존의 가능성을 조금만 암시 받아도 얼굴이 환해지셔서 안타깝게 한숨을 내쉬셨다

병환으로 몸져 눕게 되시면서는 방문 열고 하늘만 바라보셨다. 현충일에 동회에서 물건들을 보내오면 집어 던지기도 하셨다. 내가 필요한 건 아들들이지, 이 따위 옷감이나 수건 나부랑이, 보국훈장이 아냐. 난 아들이 필요해. 돌아누우신 그 등에서 읽을 수 있던 분노와 슬픔과 외로움.

6월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이 계절을 무심히 넘길 수가 없다. 어머님의 마음이 전이되었을까? 그보다는 60년이 지나며 사회 구성원들이 그 비극을 잊어 버리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찾는 노력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쪽이 먼저 침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그들은 그 전쟁을 경험했을까? 어떻게 살아 남은 사람들일까? 자신들의 존재함이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뻔뻔한게 아닌가.

이런 재해(?)에서 가장 나쁜 것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잊어 버리는 것이다.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어쩌라고. 욕망이 권력의 갑주를 입게 되면 남의 삶을 손쉽게 파괴해 버리고도 의연(?)하다.  

욕망에서 분리해낼 수 없는 권력의 속성. 이건 삶이란 벌판을 지나며 만나는 질 나쁜 늪이다. 우리에게 6월의 이 늪은 아직 너무 깊다. 이로부터 자유로울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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