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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6 17:02
김학인/침묵으로 다스리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071  

김학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침묵으로 다스리기

침묵은 하얀 연꽃을 닮았다
갯벌 같은 진흙 속에서 꽃대가 올라오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꽃잎이 벙긋 열릴 때면 이파리에 구르던 이슬도 멎는다

침묵은 세상과의 사이에 간격을 준다
번잡한 삶에 묻혀 잃었던 자아를 찾아주고 멋대로 뻗은 생각의 가지를 쳐준다. 그 속에는 자신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이 있다.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마음을 가진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내공쌓기가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

침묵은 오랜 기다림 끝에야 내 것이 되어 만난다.
우리는 참으로 말로 어지러운 세상에 젖어 산다. 그런데 떠들썩하게 말을 많이 하고 난 뒤일수록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말이 사람을 얼마나 탈진케 하고 얼마나 외롭고 텅 비게 하는지 모른다. 사이버 상에서는 진위를 가릴 수 없는 무성한 말과 알맹이 빠진 말들이 난무하면서 폭력적으로 사람을 치고 받는다. 때론 걱정해주는 것처럼, 진심어린 충고인 척하면서 이미 입은 상처에 은근히 불을 지피는 횡포도 사양하지 않는다.  

비틀거리는 사람에게 위로나 격려를 해주지 못할 바엔 차라리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때에 맞는 말은 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면 깊은 말을 담고 있는 침묵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침묵은 금이다” 라는 격언은 그래서 나온 것일 게다.

정보의 홍수를 맞은 현대사회는 문화의 다양성과 가치관의 다각적 차이로‘금‘이라는 침묵보다 촌각을 다투는 빠른 소통으로 공감대를 넓히고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대화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고 성급해져 인성(人性)마저 변질되는 듯 싶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이 성공비결을 제시한 내용 중 하나가 속내를 털어놓지 말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인관계의 321 법칙이다. 3분간 들어주고, 2분간 맞장구 쳐주고, 1분간 말을 하란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상당한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통신망을 눈부시게 발전시켰고 휴대전화는 신체의 일부처럼 밀착해졌다. 그렇다 해도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혼자 킬킬거리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볼 때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그들대로 컴퓨터와 텔레비전 속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인지 현대인들은 점점 더 혼자가 된다.

나는 세상살이에 상한 마음과 찌든 생각들을 침묵 속에 밀어 넣는다. 갈등과 분노, 슬픔과 좌절, 허세와 자기변명, 내면에 숨어 고개를 내미는 교만과 위선, 심지어는 깊은 고통까지 침묵 속에 지긋이 담가둔다. 때가 익으면 그것들은 축적된 침묵의 힘이 만들어 준 분쇄기에 끌려 들어간다. 곱게 갈아지고 말간 정수로 씻긴 생각들은 새로운 말로 다시 태어난다

부드러운 화해의 말, 보석 같은 희망의 말,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말, 순수하고 따스한 말들은 마침내 감사의 기도로 이어진다. 깊은 침묵 속에서 나를 지으신 분을 만나고 그 뜻을 헤아리게 되면서 전폭적인 순종을 배우게 된다. 침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로 나를 덮는 은혜다.

조류의 제왕 독수리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시리아 북쪽에 타우라스라는 산이 있다. 독수리가 가장 즐기는 먹이는 두루미다

두루미들이 이동경로를 따라 타우라스산을 넘을 때면 저들은 마음껏 배를 채운다
‘뚜루루룩’ 울면서 유난스런 퍼덕거림으로 소음을 내며 산에 오르는 두루미들은 날카로운 독수리의 부리를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타우라스산을 수 없이 넘나들어도 희생되지 않는 노련한 두루미들이 있다

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에 돌을 잔뜩 물고 나서기에 무사히 산을 넘는다고 한다.

자연에는 헤일 수 없는 침묵의 언어가 배어있다
나무와 풀과 들꽃이 핀 언덕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인간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생명의 언어들이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명이 가득 찬 언어들은 경이롭고 신비하다. 거기에는 하늘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가득 차 있고 그 한 자락이 인간 사랑으로 내려와 안온하고 미세한 손길로 눈길 닿는 곳마다 머물러 있다. 새벽안개는 소리 없이 걷히고 만물은 서서히 자신을 드러낸다

고요함 속에 태양이 뜨고 제 몫을 다하면 노을을 데리고 조용히 내려앉는다. 별들을 앞세운 달도 말없이 공중에 걸린다. 고요함 속에 생명체들이 자란다. 누가 철 따라 맺은 열매가 맛을 익힐 때의 소리를 들어보았는지.

침묵은 기다림을 가르치고 사랑의 시원(始原)을 확인시킨다
침묵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오늘도 침묵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다스린다.




**시애틀N은 시애틀지역 한인 문인들의 글을 환영합니다. 시애틀N의 <문학의 향기> 코너에서는 시애틀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수필과 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문학의 향기>코너로 가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김영호 13-08-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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