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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21 23:10
공순해/구름꽃 피는 언덕
 글쓴이 : 공순해
조회 : 3,610  

공순해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구름꽃 피는 언덕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 보면 그들에겐 롤모델, 즉 스승이 꼭 있다
그들은 그런 존재를 통해 더 먼 곳, 더 높은 곳으로 자신을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내겐 그런 존재가 없다. 왜 그리 되었을까? 이건 순전히 자신의 아둔함과 오만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60년을 넘게 답보(踏步)하고 있는 것일 게다.

이런 내게도 빚 진 두 분 스승이 계시다. 박목월 선생님과 박영준 선생님. 두 분이 작고하신지 무릇 얼마가 지났던고. 대학 이 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박목월 선생님 댁을 팥 방구리 쥐 드나들 듯 했다. 그 때, 남학생들이 오면 내다도 안 보신다던 사모님께선 여학생들이 반갑다고 재채기가 나도록 단 커피도 대접해 주셨다.

선생님의 서재에서 우리는 경외의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귓속말을 주고받곤 했다. 소박했던 풍란 분, 천장 끝까지 닿아 있던 책들, 낮은 숨소리가 느껴지던 60년대 말 원효로의 햇빛. 내외 분이 시장 가서 사오신 막사발을, 귀퉁이가 찌그러졌는데도 운치 있다 하시네, 우리는 뒤에서 낄낄거리며 흉(?)보기도 했다.

아마 선생님의 그런 소박한 성품 때문에 우리는 서슴없이 댁을 드나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작품 쓰실 때면 내복 바람 채 방바닥에 엎드려 쓰시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복 팔꿈치가 다 해져 몇 번이고 꿰매 입으신다고 했다. 자신의 쑥스러움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선생님은 혀를 낼름하는 귀여운(?) 모습도 갖고 계셨다.

내가 그렇게 친구들을 몰고 선생님 댁을 자주 갔었던 건 원고 받고, 또는 원고료 전해 드리고, 선생님과 시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도 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은 아주 엄격하게 작품 지도를 해주셨다. 그래서 재학 중에 등단한 친구도 생겼다.

그때 선생님은, 니는 와 소설을 쓰노? 시를 쓰면 좋제. 아니믄 평론을 하던가. 니 기질은 그긴기라. 그라고 평론을 하면 동규에게 갈 수 있잖노. 또 그라고 학보사 기자 그만 하그래이. 글이 거칠어지잖노, 하시며 나를 걱정해 주셨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당신의 절친 박영준 선생님에게로 보내셨다. 하지만 박영준 선생님은 타 대학에 나가시는 분이니 지도를 받으려면 다방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목이 가늘어 머리가 굴러 떨어질 것 같이 보이는 마담이 있던, 소공동의 가화다방은 선생님과 나의 강의실이 되었다. 선생님은 원고 말미마다 빨간 볼펜으로 서사의 인과 관계를 꼼꼼하게 써 주셨다.

도리우찌 박영준 선생님! 그때 그 분은, 장용학 냄새가 너무 난단 말야. 그러면 작품 길게 못 써, 라고 내 장래(?)를 염려해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선생님의 객관적 사실적 풍보다는 관념 풍이 더 우위라고 생각하던 겉멋 든 학생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거나,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는 걸 유치하다고 생각하던 건방진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예언(?) 탓이었을까? 나는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여기에 와 섰다. 그때 박목월 선생님이 걱정해 주시던 문제나, 박영준 선생님이 염려해 주시던 문제를 빨리빨리 깨달을 수 있게 내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나는 오늘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아둔과 건방. 이것이 오늘의 나를 결정 지웠다. 그러기에 내게 스승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 분들을 모시지 못했던 내 어리석음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두 분 스승께 얻은 것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연필로 작품 쓰시던 박목월 선생님, 모자 쓰시던 박영준 선생님. 그래선가, 나는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쓰며, 모자 쓰기를 즐긴다.

그랬기에 해마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두 분을 위해 죄송스런 마음으로 묵념을 한다. 후회를 먹고 인생이 익어 가는 느린 자의 슬픔이여! 통렬하게 가슴치는 회한을 쓸어 내리며, 아둔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하여 지나간 내 젊은 날에 조의를 표하며, 차제(此際)에 할 수 있는 말은 좋은 스승을 만나 잘 섬기는 자가 더 먼 곳,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 15일은 한국의 스승의 날이다. 80년대 들어부터 뉴욕시에선 한인학부모협회를 중심으로 이 날을 기념해 왔다. 그래서 이젠 이 날이 타 인종에게까지 전해져, 뉴욕시 교사들이 일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이 됐다. 워싱턴주에서도 구름 꽃 피는 언덕에 오르는 자녀들에게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가르치는 미풍양속을 일으켜, 우리의 후손이 더 먼 곳,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인재로 자랄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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