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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4 23:28
안문자/끝이 없는 사랑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064  

안문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끝이 없는 사랑

 
젊은 음악가의 선물은 멋지고 색다르다. 신혼인 조카 부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레미제라블> 영화 초대권을 받았다. 이모님, 이모부님, 두 가지 행사를 연거푸 치르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느냐는 기특한 마음이 담긴 카드와 함께.

지난 연말에 우리 부부가 아버지의 10주기 추모예배와 18회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개최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것을 조카 내외가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 된지 한 참 지났는데도 그들과 함께 간 그 날도 극장이 만원이었다. 우리 다섯 명은 빈자리를 찾아 여기 저기 따로따로 앉아 감상하게 됐다. 영화관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이렇게 일행과 떨어져 혼자 앉기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장장 2시간 30분의 뮤지컬 영화는 단숨에 지나갔다. 환상 속에 듣는 것 같은 합창의 화음, 감정을 살려낸 독창, 중창은 나를 압도했다. 슬프고도 애절한 가락과 인물들의 연기로 더욱 살아난 절망과 그리고 환희, 희망, 사랑의 노래는 소름이 돋도록 파고들며 가슴을 벅차게 했다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는 말대로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삶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휴머니즘이 절정에 달한 소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미제라블>의 바닥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짙게 깔려 있음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 주인공의 이름을 딴 동화<장발장>을 읽었다. 배고파서 울고 있는 어린 조카를 위해 훔친 빵 한 개로 어떻게 19년을 감옥에서 살게 한단 말이야? 너무 불쌍하고 억울해서 울었던 일이 기억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장발장에게, 내가 준 은 촛대는 왜 놓고 갔느냐고, 양손에 촛대를 들고 안겨주던 신부님이 천사인가 봐, 했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장발장과 공주 같던 수양 딸 코제트, 왕자 같던 사위 마리우스와의 대화가 슬프면서도 멋이 있어서 언니와 함께 큰소리로 읽고 또 읽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기대했던 대로 감명 깊고 인상적이었다.
장발장이 죽기 전,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사위는 당신은 성자라고 말하며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장발장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주기도를 암송하며 죽었고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미가엘 주교의 품으로 사라진다

또 다시 온몸을 전율케 하는 합창이 웅장하게 이어졌다. 주제가 반복되는 노래들은 영혼을 울려주었고 비극의 여인 판 팅의 노래는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방대한 비극의 전개는 행복과 희망으로 끝을 맺으니 슬퍼서 울다가 고마워서 또 운다.

앞 뒤에서 관객들의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내가 그들만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소화를 못했다는 증거다. 뉴욕의 딸도 울었다고 했다. 두 번째 감상에서는 더 많이 울었다나. 누구는 댓글에서 열 번까지 보고 싶은 영화라고 했다. 드디어, 남편과 나는 다시 영화를 보았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는 것이 작가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작가 정신에 걸맞게 잔인하면서도 비도덕적인 기득권자들의 난폭한 부정을 분개하며 썼을 것이다. 프랑스가 문화적인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배후에는 빅토르 위고 같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웃게 하는 작품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던 국민 문학가가 있기 때문일 게다.

나는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에 이 세상에 수 없이 많은 죄악에 오염된 사람들은 오로지 이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감동 때문에 영화의 의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미가엘 주교로 인해 변화된 장발장은 부자가 됐을 뿐더러 훌륭한 시장이 되었는데도 쓰레기 더미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는다. 이러한 장발장의 모습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가슴에 안았던 예수님의 모습처럼 보였다.

인간의 역사는, 아니 현재까지도 인간은 인류를 위해서 공헌한 위대한 일도 많이 했지만 그 못지않게 고통을 준 일도 많다. 불의를 보면서도 눈을 감으면, 학대받는 사람을 보고도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양심을 속이면서 자기의 이익을 찾는다면 작가나 교육자, 정치가, 예술가, 심지어 종교지도자마저도 인간적으로 존경받지 못할 것이다.

종합예술인 영화는 과연 위대하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높고도 깊은 의미들은 인간에게 얼마나 건강한 정신과 따뜻한 가슴을 갖게 하는지, 감정을 순화시키며 선으로 향하는 영향력을 끼치는가를 다시 배운다

예술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문득 뉴욕에서 조각에 열중하고 있을 동생이 생각난다. 요즘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을까? 역시 기대한 대로 마무리 되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끝이 없는 사랑: Unending Love>이란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삶의 가치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인간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려 본다.

삶이란 끝이 없는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국일보 2013년1월 게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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