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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16 17:25
[시애틀문학-수필] 일곱 개의 슬픔, 세 개의 감사-안문자 수필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810  

안문자 수필가

 
일곱 개의 슬픔, 세 개의 감사
 

해가 바뀌었는데도 몇 개의 카드가 왔다. 반가운 소식 중에 가끔 어느 누가 대신 써 준 카드가 오곤 한다. 본인이 쓰지 못한 글들은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하늘나라로 갔거나 사연이 있어서다

암 말기로 고생하던 친구를 대신한 남편의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 ‘안문자씨, 아내 신 아무개는 몇 월 며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또 한 통의 카드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안문자, 나는 이제 침대생활을 한다오. 조용히 묵상 중에 하나님께 갈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안문자와 수 십 년 주고받던 아름다운 성탄카드 교환은 앞으로 어렵게 될 것 같군요. 답이 없으면 내가 쓸 수 없던가, 정신이 없어졌던가, 아니면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생각해요.’

해마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긴 글의 카드는 오지 않았다. 친구의 카드 속에 ‘K선생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단다.’라는 슬픈 소식이 왔을 뿐이다

카드 보내기의 명단에서 주소를 지우고 있을 땐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한 문장 속에 끝나다니. 이젠 지상에서 이분을 볼 수 없구나.’라고 읊었던 어느 시인의 <부고>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허무하고 슬프다.

지각 카드 중에 알 수 없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누구누구의 딸입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글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전화통화를 원하세요. 우리 집 전화번호입니다.’ 어머나, 친구 S이구나. 교통사고라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겨버린 쉰 목소리가 끊어질 듯하며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성악을 전공한 목소리는 잃어버렸다고 했다. 대형의 사고를 당했고 지금은 재수술을 기다린다고 겨우 말을 이어갔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너무 힘들어해서 더 이상 말을 시킬 수 없었다. 겨우 어디를 다쳤냐고 물으니 많이 다쳤어.’하고 만다. -해진 나는 위로할 말을 찾고 있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청천병력의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고 산다.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겠으며 고통 없는 인생이 어느 세상에 있겠는가? 도처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불행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대책 없는 두려움으로 바라볼 뿐, 나에게만은 비켜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 수 밖에 없는 속수무책의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왔다. 그가 일어난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영원히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 같단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 하루의 삶이 아깝다고 한다. 친구는 느닷없이 손가락이 세 개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엄지가 남아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그렇기에 밥도 하고, 글도 쓰고, 호미도 쥘 수 있단다. 반응이 없으니 조금 웃으면서 손가락 일곱 개를 잃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알아 들었지만 충격이 너무 커 말문이 막혔다. 세 개 남은 손가락으로 남편을 위해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행복하게 웃는다

남편이 오랫동안 자기를 위해 희생적으로 간호해주고 살아나도록 보살펴준 수고를 생각하면 그 사랑을 어찌 갚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이제는 세 개의 손가락으로 땅을 파고 고추랑, 상추, 방울토마토를 심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보기에는 흉하겠지만 남아준 세 개의 손가락이 감사하다고 하며 두 팔이 없는 사람들도 거뜬히 살지 않느냐고 질려있는 나를 오히려 위로해준다.

우리의 삶은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이 영원할 것처럼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며 짧은 시간을 낭비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잠깐 머무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며 손가락을 펴본다

나는 열 개의 손가락에 대한 감사를 해 본적이 없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친구를 떠올려본다. 그의 노래에 반주를 하던 내 열 손가락에서 두 엄지를 남겨놓고 일곱 개를 빼보았다.

순간 너무 비참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일곱 개의 충격이, 가눌 수 없던 슬픔이 이젠 세 개의 기쁨이요, 감사가 되었다니 그가 위대하다.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눈을 잃지 않아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황홀함이, 밥을 짓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행복이, 만나는 사람마다 기적이라고 축하하는 인사를 받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그저 황송한 감사라고 말할 땐 나의 가슴이 떨렸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살려 주셨는지, 덤으로 살게 된 남은 인생은 살려주신 이유를 깨달아 어떤 삶을 이어가야 되는지가 큰 숙제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겨우, ‘정말 감사하구나.’라고 말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잠기고 말았다

사라진 손가락에 대한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삶이란 살아온 것도 기적이요, 살아갈 일도 기적이라고 말한 어느 작가의 글만 떠올렸을 뿐이다. 목소리는 잠겼지만 힘이 있었던 그의 마지막 말

이젠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단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이 울었다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겠니? 슬픔 중에도 감사하면 미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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