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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7 11:53
[시애틀 문학-김학인 수필가] 나의 밀실 유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773  

김학인 수필가

 
나의 밀실 유희
 
 
짧은 겨울 해가 기울기 전에 어둠이 스멀스멀 번져온다. 나목의 여윈 팔들이 어둠에 묻히자 나는 커튼을 닫고 밀실에 들어박힌다.

내 작은 책상 둘레에는 크기와 색이 다른 쪽지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금 하십시오” 찰스 스펄전 목사의 시다. 맥없이 앉아있는 나를 다그치듯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그래, 나의 해가 저물기 전에 노래를 부르리라. 오늘은 좋은 날, 지금은 가장 소중한 시간이야. 다시 오지 않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오늘 이 시간, 심장이 뛰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나를 설레게 한다. 생각이 흩어지면 산책길에 올라 송진 향으로 머리를 맑게 씻는다

신비롭게 변하는 자연에 눈이 놀라워하고, 커피의 향긋함에 취해 깊은 숨을 들이쉬고, 흑장미에 마음을 빼앗긴다. 제철에 익은 열매의 단 맛을 혀끝에서 즐기고, 그리움으로 쏟아지는 별빛을 받아 안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속내를 털어 대화를 나누는 값진 오늘, 이 시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 그렇게 살고 싶어 했지만 오늘을 못보고 떠난 이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온 몸이 저려온다. 오늘, 지금, 이 시간은 보잘 것없는 내게 하늘이 허락한 축복이며 선물이다. 노래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벽엔 또 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밝고 천진스럽게 노는 사진도 한가운데 붙여 놓았다. 어린아이 셋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고 있다. 나는 우울할 때면 이 아이들의 미소를 빌려 기분을 돋우고 행복해진다

그들의 더 없이 사랑스런 모습은 아스라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온다. 내게도 소꿉친구들과 강변에 앉아 재잘거리며 웃던 때가 있었다네. 나는 아이들 틈에 수줍게 끼어 앉아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함께 웃는다. 뭉게구름이 장난기 어린 우리의 간지러운 웃음을 실어 나르곤 했지. 해맑은 그 얼굴들을 보며 나는 실실 미소를 흘린다.

성 어거스틴의 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나는 갑자기 매무새를 고쳐 앉는다.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서 우리를 죽게 하시고, 주님의 뜻 외는 아무 것도 원치 않게 하소서’라고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했다. 주님만이 그의 전부였다. 모든 생활은 주님께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주제넘게도 그건 감히 닿을 수 없는 내 영혼의 간절한 바램이요, 부르짖음이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위대한 생애를 시작한 것은 32세 때라고 한다. 훗날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자신을 회심케 했다고 참회록에 기록했다.

그 옆에는 자칫 흔들리는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듯 성구 몇 절이 크고 작은 쪽지로 내 갸우뚱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주여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10년이 넘도록 책상 옆에 붙어있는 시가 있다.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면”
미국 현대시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이다.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게 할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시를 적은 분홍색 종이는 빛이 바랬지만 지금도 가끔씩 외워본다. 나는 무엇으로 헛된 삶이 아니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에밀리는 20 여년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사랑과 죽음, 이별, 천국 등을 소재로 2 천여 편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그녀의 시에는 제목이 없다. 때문에 시의 첫 줄이 제목처럼 쓰이기도 한다.

에밀리 디킨슨, 그 생애에서 유명한 에피소드는 철저한 칩거생활과 아마도 그녀가 30대 후반부터 55 세로 죽는 날까지 고수했던 흰색 옷일 것이다. 이렇듯 고립된 생활과 흰 옷만 입고 지낸 것에 대해서 많은 연구자들은 에밀리가 아마도 몇 번에 걸쳐 열렬한 사랑에 빠졌고, 이별의 상처와 기다림의 갈증을 견뎌야 하는 시린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절실하게 사랑했던 것이 누구였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시인의 말 못할 아픈 세월이 내 가슴을 상상으로 헤쳐 놓는다.

책상 오른 쪽에는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비바람 부는 날, 어미 새가 겁에 질린 어린 새를 날개 안에 품고 있다.

“그분이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아래 피하리로다(:99:4)
사진 아래는 누군가의 다른 글이 나약한 담을 뛰어넘는다.
“삶이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에요. 내일을 위해서 겁먹지 말아요. 그 분은 이미 거기 계시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폭풍우 가운데서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독수리처럼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아래 위를 힘차게 흔들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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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15-02-01 19:20
답변 삭제  
고맙고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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