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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31 01:51
[시애틀 수필-정동순] 아시콰의 가을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828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이사콰의 가을

 
계곡을 따라 밀려드는 관광객들이 연어 떼처럼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애틀 근교의 작은 도시 이사콰에는 해마다 연어축제가 열린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계곡으로 연어들이 서로 등이 부딪히도록 빼곡하게 계곡을 거슬러 온다. 코호 연어의 빛나던 은빛 몸통은 가을 단풍처럼 붉게 몸의 빛깔을 바꾸었다. 어떤 연어는 턱뼈도 갈고리처럼 휜다고 한다.

.. 계곡물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함께 시간도 떨어진다. 막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숨을 할딱이는 연어의 무리들이 모여드는 계곡물처럼 시간은 처음에서 끝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쉼 없이 흐른다. 그 흐름이 때론 너무 빠르게 느껴져서 아득하기까지 하다.

모천으로 돌아와 생의 여정을 다 이룬 연어들을 보니, 몇 달 동안 이사콰의 병원에 누워 계셨던 아버님의 마지막이 겹쳐진다. 아버님은 송어나 연어 낚시를 무척 좋아하셨다. 긴 장화를 신고 강물에 들어가 플라이 피싱을 즐기셨다. 낚시에 쓸 곤충 모양의 미끼를 만드는 일에도 열심이셨다.

어느 날 예고없이 두 번째 뇌졸중이 찾아왔다. 가족들은 아버님께 남겨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 드리기 위해 애썼다. 의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아버님과 같이 있는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고 했다.

물살을 따라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는 일은 수십 배나 힘들다. 돌아오는 여정이 험난한 것은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일만이 아니다. 연어들은 혼신을 다해 솟구쳐 올라 보나 폭포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짐승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연어들이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더욱 놀라운 것은 연어는 모천으로 회귀하는 긴 여행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님의 시간을 거스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이 눈물 방울로 맺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님은 생의 마지막 20여일을 거의 곡기를 끊으셨다. 그러곤 피곤하다, 쉬고 싶다 하셨다. 재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이사콰 계곡으로 돌아오는 코호나 샤카이 연어들은 사마미쉬 호수를 따라 내려가서 태평양에서 성년기를 보낸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유유히 헤엄을 치며 큰 바다에서의 모험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험난한 파도에 휩쓸려 최후를 맞거나 고래나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당신께서 살아오셨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던 일이 있다. 아버님은 1920년대 말 미국의 대공황기에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계를 위해 벌목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통나무에 맞아 엉치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야망에 차 있을 스무 살의 청년이 걷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서 가장 절망적인 인생의 시간을 맞았다.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ROTC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그 시기는 2차 세계대전과 우리나라의 625 전쟁일 때였다. 때문에 미군 장교로서 이국의 땅에서 일어난 625전쟁에 목숨을 걸고 참여하게 된다. 그 때부터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나와 아버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에는 보잉 항공사에서 일하며 아폴로 우주선 계획에도 참여하신 고급 엔지니어로만 아버님을 알았었다. 노후를 넉넉하고 평온하게 지내셔서 아버님께 그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기아와625전쟁을 겪고 온갖 고생을 하시며 자식들을 키우셨던 친정 아버지가 생각났다. 두 아버지의 삶이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날 새벽, 잠에서 깨었을 때 예감이 이상했다. 서둘러 큰 아이를 깨워 아버님의 병실로 갔다. 전날 저녁, 둘째 아이와 남편은 오랫동안 아버님 곁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병실에서 혼자 주무시고 계시다가 우리가 들어서자 눈을 뜨셨다.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전부터 드리고 싶었던 말을 했다.

“아버님, 저희 왔어요. 이 아이가 아버님의 이름을 물려받은 장손이에요.

“아버님, 좋은 가풍에서 아들을 잘 교육시켜 주시고, 며느리로 저를 미쁘게 받아들여 주셔서 고마워요. 아버님, 사랑 안 잊을게요.

아버님은 큰 아이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특유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새벽이었다.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밝아 왔고, 아버님은 한줌의 재가 되어 연어들이 뛰노는 전나무숲 계곡으로 되돌아가셨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단풍잎이 뚝뚝 떨어진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란 말을 생각하며 배를 뒤집어 눕는 연어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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