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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2 11:39
[시애틀 수필-공순해] 꽃이 피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023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꽃이 피다
 
때로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이 있다.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며 근육이 이완되길 기다려도 정신은 오히려 더욱 또랑또랑해 가기만 한다. 베개에 눌린 귓바퀴가 깨지도록 몸을 잠들기에 집중시켜 보지만 야차에게 잡혀갔는지 잠은 도무지 찾아올 줄을 모른다.

시계가 한 시를 넘어 가리키면 오지 않는 그 놈에게 서운함조차 느껴진다. 이토록 기다리고 있건만 넌 어느 처마 밑, 찬 이슬에 젖으며 놀고 있단 말이냐. 달도 없는 이 캄캄한 밤에. 어기야 어강됴리!

한숨과 함께 뒤채며 돌아눕다 보니 문득 짚이는 바가 있다. 잠들기 전 뭘 했던가. 그 놈 쫓을 짓을 잔뜩 해놓고, 이제와 오길 기다리다니. 생각해 보니 면목이 없다. 공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거늘 잠 이루기가 쉬울까.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잠 이루기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 놈을 쫓을 음식물 섭취 주의는 물론, 낮 동안 적당한 운동을 해서 몸이 잠들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한단다. 즉 수면량을 모았어야만 했다

날씨가 건조해지면 식물들이 내생휴면하고 냉각량을 저축하듯. 그리고 몸이 잠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노동 총량 모으기에 박차를 가하여야만 몸이 잠에게 점령되어 드디어 수면이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노동 총량에 의해 꽃으로 피는 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관심이란 관계 보존 장치를 가동하여, 일지 기록하듯 성실하게 신뢰량을 쌓아가야만 한다. 그 신뢰량은 차가운 겨울나기를 하듯 부침을 겪으며 다져가야만 하지 단숨에 그 양에 도달하면 부실한 토양에 무너지는 봄의 논둑 같아진다. 그러기에 그 신뢰량은 노력이란 가온량이 함께 작동해야만 한다

노력이란 숙성 장치를 가동하여 전심전력해야 따끈한 관계가 조성된다. 관심과 노력 총량에 의해 꽃으로 피는 인간 관계.

신앙도 그렇다. 믿음이란 관계 보존 장치가 작동되어야 신앙은 가납(嘉納)된다. 믿음이란 결단, 그리고 회개라는 냉각량이 채워져야 자기 포기가 이루어진다. 나아가 전심전력 기도로 가온량을 채우도록 힘써야 한다. 즉 기도를 쌓아 인격적 소통이 형성되어야 한다. 회개와 기도의 총량에 의해 꽃으로 피는 신앙.

작품 한 편 빚기도 똑같다. 나이 먹어가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 살아온 과정을 후손에게 글로 남기면 춘몽 같은 일생이 헛 산 게 아니게 될 터인데 하고. 그래서 여기저기 문학 강좌를 기웃거리게 된다

그래도 한때 문청(文靑)이었다거나, 고교 시절 국어 점수가 괜찮았다거나, 문장력 있다는 말도 들어본 터이면 욕망은 더욱 활활 타오른다. 잘하면 노년을 지면에 이름 올리며 수준(?) 있게 지낼 수 있을 터이니 이건 넝쿨째 굴러온 호박 아닌가.

그러나 거기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문학이 예술이란 점. 예술은 창작이다. 일반인과 창작인이 같은가. 이 점을 간과한 채 혼미의 밤이 거듭된다. 왜 내 글이 나쁘다는 거야. 산전수전 겪은 내 인생이 거기 녹아 있는데, 충분히 감동적이지, !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와 원망이 웃자란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감동은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경험한 바이니, 새로울 게 없다. 이쯤에서 꿈 깨면 좋은데, 한 번 먹은 마음이 어디 쉽게 바뀌나.

이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글 쓰기에는 구성에 관해 일신(日新)이란 냉각량이 모여야 한단 점이다. 차갑게 자신을 응시하며 객관적으로, 그러나 주관적 매력이 넘치게 써내야 한다. 이런 줄타기는 문신(文神)이 슬쩍 그림자라도 비춰 줘야 가능하다

하지만 문신이 별에서 여기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만만한 게 아니다. 차라리 섬돌에 비치는 달을 기다리는 쪽이 더 수월할지 모른다. 아무튼, 그리하여 어느 날 그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탁마(琢磨)를 거듭하여 가온량을 채워 작품 한 편이 이루어진다. 일신이란 냉각량과 탁마라는 가온량의 총량에 의해 꽃으로 피는 한편의 글.

그럼 꽃은 정작 한 송이 꽃을 어찌 피우는지 한번 보자.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꽃의 개화 과정도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식물들은 날씨가 건조해지면 내생휴면(內生休眠)에 든다. 철모르고 꽃을 열었다가, 뒤이은 추위에 얼어 죽는 낭패를 보지 않으려는 생명 보존 장치인 셈이다

그러며 생체 시계에 냉각량(冷却量: 저온 요구량)을 모아, 어느덧 겨울이 깊어 그 수치가 정해진 양에 이르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겉으론 계속 잠자는 듯 보이게 한다

마치 동면에 든 동물들처럼. 그리하여 드디어 가온량(加溫量: 고온요구량)이 채워지면, 비로소 개화를 이룬다. 이렇듯 한 송이 꽃에 장장 9개월이 걸린다. 난마처럼 얽힌 섭리로 이같이 모든 것은 꽃핀다. 초조해 한다고 되는 노릇이 하나도 없다. ‘때가 차매’ 이윽고 꽃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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