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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6 13:12
[시애틀 수필-공순해] 고맙습니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883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고맙습니다

 
둑두두, 덱데그르르. 뒤뜰 덱에 뭔가 떨어지고 있다. 얼른 창으로 내다봤다. 산들바람이 지나가는 나무 아래 솔방울들이 갓 태어난 아기들처럼 뒹굴고 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 들여다보듯 자세히 내다보니, 몸을 푼 소나무들이 지친 듯 만족한 듯 바람에 흔들린다

올핸 작년보다 많은 솔방울이 떨어진다. 생장에 위협 느낄 무엇이 있었던가. 있는 힘을 다해 분만을 끝낸 뒤,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선 소나무들이 대견해 보인다. 흥부댁네 모습이 저러했을까? 

예전엔 가난한 집에 애가 태어나면 제 먹을 건 제가 지니고 나온다고 했다. 하늘님이 인간을 내면 먹을 것도 함께 내신다고. 그리고 대개 그런 가정엔 어머니의 인내와 희생이 별전(別傳)처럼 따라붙었다. 자식을 생산하고, 품어서 생육하기에 어머니의 골수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자연스레 생각이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민자들로 형성된 거리엔 여러 인종과 계층이 섞여 살았다. 그들은 가난할수록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 수입원은 웰페어였다. 하니까 서로 농담 주고받길, 수입이 더 필요하면 애 하나 또 낳아, 했다. 말하자면 가족 두당(頭當) 얼마의 수입이었다. 그래서 가게에 와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을 때면 흥부네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흥부댁네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미가 랄리팝을 사길래 그게 애 입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자기 입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그녀는 말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을 느끼지.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맞지? 실소를 흘리는 내 반응을 그녀는 긍정으로 인정한 듯 한입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잡아채 끌고 가게를 나갔다.

어미가 우선인 얘기는 꼭 그들 만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당숙모 중에도 그런 분이 있다. 625 피란길에 당숙모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당숙은 귀향 길에 새 당숙모를 데려오셨다.

그리 쉽게 사는 분이니 세상이 다 쉬웠다. 그분에게 중요한 건 충녕대군 자손 여부 정도였다. 적은 수입이었건만 약주가 떨어지질 않았다. 그 습성은 날로 심해져 종래는 알코올 중독이 됐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새 당숙모는 당숙이 알코올 중독으로 헤매고 있을 때 집을 나갔다. 가난한 집, 흥부 새끼 늘듯 가난이 는다고 아이 셋 있던 집에 둘을 더 보태 주고서였다.

밑의 육촌 둘은 성장할 때까지 재혼한 엄마를 찾아가곤 했나 봤다. 그러나 그쪽도 넉넉하진 못했던 듯 찾아오지 말라고 했단다. 끼니도 간 곳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하염없던 육촌들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몸도 맘도 고팠을 것이다. 엄마의 행복에 앞서 인륜을 저버린 일이라고, 어린 내 마음에도 울컥해지던 기억이 난다. 솔방울 뿌려 놓듯 자식만 뿌려 놓고 간 당숙모는 무슨 심사로 그랬을까?

하지만 인간은 솔방울 이상이지 않을까. 14 후퇴할 때,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는 안 계셨다.

그 피란길에서 큰오빠가 병이 났다. 새총에 무릎을 맞은 적이 있는데, 먼 길을 걸으니 그게 덧났던가. 점점 무릎이 부어올라, 종래는 걷지 못하게 됐다. 적군의 추격은 빨라지고, 아이는 걷지 못하고, 그러자 일행들이 촉박한 나머지 요구했단다. 함께 죽을 거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가자고. 그때는 실제로 버리고 간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지켰다. 머리에 인 보따리를 저만치 가서 내려놓고, 도로 돌아와 아이를 업고 그 자리까지 가서 내려놓길 반복해 아이를 업어 날랐다. 일행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게 끝까지 아들을 지켜냈다. 그렇게 해서 예산 피란민 수용소까지 걸어가셨다고 했다.

이 전설 아닌 전설은 들을 때마다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고 보니, 이젠 공평한(?) 시각에서 그 일을 보게도 된다. 혹시 그건 나아가 종족 보존 본능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육환경이 나빠지면 소나무가 더 많은 솔방울을 매달듯, 위협을 느끼면 본능으로 종족을 끌어안는 게 모성이다

육촌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면 아마 그 당숙모도 달려와 자식을 품지 않았을지. 솔방울인 듯, 그러나 솔방울 이상인 게 인간 아닌가.

올핸 유난히 솔방울이 많다. 찌그러진 밤송이같이 못나 보이는 솔방울들. 혹시 저 솔방울 중 하나가 나 아닐까? 맞아요! 내 생각을 지지하듯 뒤뜰 덱에서 또 소리가 난다. 둑두두, 덱데그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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