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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7 19:55
[시애틀 수필- 염미숙] 실수가 고마워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584  

염미숙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실수가 고마워

 
“그럴 리가!” 젊은 시절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 힘들었을 때 종종 했던 말이다. 자신과 사람에 대해 기대가 충만했던 그 시절엔 실수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일일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일이 벌어지면 그 실수의 책임을 묻고, 잘잘못을 가리는 일로 기운을 소진했다. 그러나 이젠 웬만한 실수는 일상인 양 호들갑 떨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틈에 “그럴 리가!” 는 “에구구, ....”로 바뀌어 버렸고, 어쩌면 실수란 나의 본질과 관계 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실수에 관한 더욱 황당한 일이 있다. 실수라 여겼던 일이 결국 내게 이득이 될 때이다. 내 생각과 계획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은 씁쓸하지만, 제 머리를 쥐어박으며 슬그머니 웃게 된다.

언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그 결과로 슬퍼질지, 기뻐질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에게 주어진 명령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불쌍히 여기는 것인가 보다. 불완전한 모든 사람의 삶에는 예측불허의 일이 일어나고, 반전이 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의 이야기는 재미 있다.

조카의 결혼식을 앞두고 파란색 스웨이드 구두를 샀다. 오랜만에 신어 보는 하이힐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피로연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 조각을 밟는 바람에 구두코에 진한 얼룩이 생겼다. 한번 신은 구두였는데.... 아까운 마음에 버릴 수도 없었다. 몇 주가 지난 후, 언니에게 이야기했더니 환불받거나 바꾸어 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권했다.

인상 좋은 종업원은 명백히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데도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똑같은 새 구두로 바꾸어 주겠다고.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압권이었다. “아! 지금 그 구두가 할인판매 중이군요. 그러면...16불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이로써 조카의 결혼식에 관한 모든 일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남게 되었다.


가끔 수채화를 그린다. 고의로 칠한 붓질이 아닌, 사고로 얻게 되는 질감에 몹시 흡족할 때가 있다. 진한 물감으로 칠한 배경에 실수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은 색을 밀어내어 번지며 얼룩을 만들었다. 이번엔 진한 물감의 배경에 다른 색의 물감이 뿌려졌다

번짐은 덜 하나 생동감을 주는 것을 표현할 때 효과적이다. 어떤 색을 칠한 뒤 맘에 들지 않으면 물에 적신 종이로 물감을 빨아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얻는 질감 또한 독특하다. 이런 효과들은 사람이 붓으로 일일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초보자의 수채화 속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수채화 그리기 책 속엔 나의 실수들이 주요한 수채화 기법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어리바리한 나를 닮아 정이 가는 녀석이 있다. 올봄에 텃밭에서 삽으로 흙을 뒤집으려다 손가락 길이만한 낯선 식물의 싹을 발견했다. 궁금해서 주변을 삽으로 들어낸 후, 싹을 살며시 뽑아 올렸다. 놀랍게도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온 것은 호두 알이었다. 갈라진 호두 틈새로 싹이 나와 자라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다람쥐 녀석!

그리도 부지런히 뒷마당을 오가더니, 결국 제가 숨겨둔 양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북미의 빽빽한 숲에 과연 녀석들이 실수로 심은 나무는 얼마나 되는 걸까

다람쥐는 나의 불로소득에 몹시 배 아파하였을까? 낭패라 생각할 것 없다. 조만간 우리 집 뒷마당 호두나무에 너와 너의 후손들이 배불리 먹을 호두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니. 실수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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