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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0 12:06
[시애틀 수필-정동순] 한 그루 포도나무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83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한 그루 포도나무

 
우리 집 포도나무는 올해도 무성한 잎을 내었다미국 사람들은 이 포도나무를 콩코드 포도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먹던 탱글탱글한 포도송이가 열린다한 번도 거름을 준 적이 없지만포도나무는 어느 해는 조금 적게어느 해는 조금 더 많이 해마다 알아서 열매를 맺는다올해도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주길 고대하면서 포도나무를 바라본다.

오래된 줄기는 동아줄처럼 구불텅구불텅 담장 밑까지 편안하게 주저앉아 있다. 물 빠짐이 좋으면서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이 나무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깊이 땅속을 헤집고 들어가야 어떤 가뭄에도 꿈적 않는 나무가 되는 걸까. 땅의 표면에 있는 양분을 쉽게 받아먹으며 자란 식물들과는 한결 다른 결기가 느껴진다.

다른 나무보다 늦게 잎을 내는 포도나무는 오뉴월에 줄기가 뻗어 나갈 때는 그 기세가 맹렬하다. 뻗어가는 줄기는 넝쿨손을 내밀어 어디든 붙잡는다. 마치 낭떠러지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처럼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위태위태 하지만 용케도 담장을 타고 중심을 잡아 나간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향해 가는 개척자처럼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기세가 자못 당당하다.

나에게 포도나무는 나누는 기쁨을 알게 한 나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줄기를 잘라 땅에 묻으면 쉽게 새 묘목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꺾꽂이법 외에도 살아있는 덩굴을 흙으로 덮어주는 휘묻이 방법으로 쉽게 뿌리를 내려 새로운 나무를 얻을 수 있다. 지난 수년간 포도 줄기를 꺾꽂이하여 여러 그루의 묘목을 내어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중 한 그루가 사람을 거쳐 건네진 곳이,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어느 목사님 댁이었다. 서너 해가 지나자 입양 보냈던 그 나무에 처음으로 포도 몇 송이가 열렸다고 한다. 

목사님 내외분은 처음 수확한 포도를 먹지 않으시고 귀하게 성찬식에 쓸 포도주를 담갔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그 후, 부활절날 나는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성찬식에서 그 나무에서 난 첫 포도주를 마셨다. 그 섭리가 참으로 신비하다.

새로운 가지에 싱그러운 잎이 가득한 건강한 포도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기쁘다. 포도송이는 그해 새로 낸 줄기에서만 열린다. 잘 발육된 1년생 가지 위에 마디마다 눈이 형성되고 다음 해에 그 눈에서 새 가지가 자라나면서 열매가 달리게 된다. 낡은 것에 안주하기보다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참신함을 이 나무가 일깨워 준다.

하지만, 덥석덥석 가지만 무성해도 좋지 않다. 불필요한 곁가지를 잘라 주어야 본 줄기에서 튼실한 줄기가 나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 아무리 풍성한 줄기라도 나무를 떠난 즉시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는 말씀을 생각한다. 줄기는 나무에서 떠난 즉시 시들어 생명을 잃게 된다.

포도는 무기질과 당분이 많아 과일로 먹을 때는 무더운 계절에 피로 해소에 더없이 좋다. 그러나 이 과일의 최고의 영예는 발효되어 포도주나 샴페인이 되는 것이다. 포도주는 사람들을 정신없이 취하게 하는 난폭한 술이 아니다. 

저녁 식사와 더불어 건강과 친교의 즐거움을 위해 마신다. 오래될수록 좋은 포도주라, 참 멋진 말이다. 사람도 나이가 늘수록 사유하는 능력도 포도주처럼 깊이를 더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고 투명한 잔에 든 핏빛 포도주. 진정 포도나무는 과일과 함께 나무의 뜻까지 신이 준 선물이 아닐까. 그 덩굴을 잘라 묘목을 길러내는 마음을 이제 성찬식에 쓰인 포도주의 의미를 전하는 마음으로 자라게 하고 싶다.

초여름 아침, 포도나무에는 작은 송이마다 꽃들이 지고 동글동글 작은 열매가 생기고 있다. 여러 곳에 간 묘목을 만들어 낸 어미 나무다. 포도나무를 자세히 보려 다가가니, 어라, 줄기 하나가 내 손을 잡으려는 것처럼 덩굴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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