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양말 한 켤레
마켓의 진열대를 지나다 보니, 두툼하고 좋은 양말이 눈에 띈다. 계획에 없던 양말 한 묶음을 사고
흐뭇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들에게 새로 산 양말을 보여주며 생색을 냈다.‘엄마, 나 양말 아직 많아요.’ 시큰둥한
아들의 옷장을 확인해보니 정말 양말이 많다. 혹시나 싶어 다른 가족들의 서랍장을 열어보니 역시 필요이상으로
많다. 왜 그렇게 자주 양말을 샀을까?
깨닫지 못했던 내 행동을 돌이켜
보니, 그 집착은 가난하고 추웠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양말이
참 귀했던 때가 있었다. 명절 때 주고받는 선물로 양말 세트가 인기 있었고, 친척 중에 누가 결혼해도 이바지로 양말이나 버선을 돌렸다.
어느
해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양말을 선물 받고 저녁에도 만져 보며 참 좋아하셨다. 아이들이 탐낼만한 바닥이
도톰하고 예쁜 양말은 더 귀했다.
그때는 겨울에 눈도 참 많이 왔다. 아이는 늘 발이 시렸다. 물려 신은 나일론 양말은 이미 뒤꿈치에
천을 몇 번 덧대었고 양말목은 납작하게 늘어져 보온 효과가 거의 없었다. 저녁이면 동상 걸린 발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근질근질해서 참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가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자기 전에 양말에 콩을 몇
알 넣어 신으라고 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허전하다. 양말을 벗어 보니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여러 해를 신은 양말이다. 전에는 구멍 난 양말도 꿰매 신었다. 이제는 1~2불 주면 살 수 있는 양말을 꿰매고 앉아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생활에 난 커다란 구멍을 무시하고 깁지 않은 것 같이 찜찜하다. 정신없이 사는 하루가
아무렇게나 신고 벗어 던진 양말 짝처럼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나 싶어서다.
우리 몸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발이다. 작업을 위해 손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 발은
대개 얌전히 몸을 지탱해 준다. 그러나 사람들의 활동성을 높여주는 것은 손이 아니라 부지런히 걷는 발이다. 몸의 기둥 같은 다리와 발을 보호하는 것은 신체의 균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 발을 보호해 주는 것이 양말이다.
구멍 난 양말을 버릴까 하다 일단은
빨기로 한다. 뒤꿈치가 헤지면 빨아서 모아 놓는 통이 있다. 양말목은
잘라놓고, 구멍이 나고 낡은 쪽은 찌든 때를 닦을 때 쓴다. 양말목으로는
주말학교 학생들과 쌀이나 콩을 넣어 콩주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학생들과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바느질도
가르쳐 준다. 더불어 바늘과 실에 얽힌 속담도 배운다. 양말목으로
만든 콩주머니는 신축성이 좋아 터지지도 않고 던지면 손에 잘 잡힌다. 양말목에 무늬가 있는 것은 콩주머니를
만들었을 때 예뻐서 더 인기가 있다.
아이를 낳았을 때, 병원에서 하늘색의 모자와 양말을 선물 받았다. 할머니들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자들이 신생아의 모자와 양말을 떠서 병원에 기증하면, 병원에서는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 선물을
전달했다. 여자 아이들을 위해서는 분홍색, 남자 아이들을
위해서는 하늘색의 모자와 양말을 주었다. 새 생명이 태어날 때, 아이의
일생을 축복해주는 마음이 한 코 한 코 엮어졌다고 생각하기에 그 모자와 양말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소홀히 벗어 던진 양말 한
켤레, 무심코 낭비하는 작은 것들은 선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죄는 아닐까. 세상을 살 만하게 지탱해주는 배려의 마음은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가지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쇼핑의 절기에 앞서 마음을 다진다.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두툼한
양말 한 켤레가 없어 맨발로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익명으로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에는
다른 물건보다 양말을 많이 넣어주고 싶다. 아니 제대로 된 신발 한 켤레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양말 한 켤레가 귀했던 날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