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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8 13:49
[시애틀 수필-이한칠] 함께 가는 길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050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함께 가는 길
 
아침을 여는 음악방송의 선율이 좋다. 출근길도 좋다. 퇴근길은 더 좋다. 나의 출퇴근 길은 차로 10분 미만으로 아주 짧다. 교통 체증을 겪는 이들에 비하면 나는 신선놀음하는 듯하다.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셈이다.

지난 봄, 생뚱맞은 생각이 스쳤다. 겨우 2마일인 출근길인데, 한번 걸어볼까. 아뿔싸, 지난 십 수년 동안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만일 출퇴근을 걸어서 했더라면, 지금쯤 내 두 다리는 씨름선수처럼 굵다랗게 되었을 텐데.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하지 않던가. 이 참에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적당히 높은 언덕 위에 내 집이 있다. 출근길은 내리막길, 퇴근길은 오르막길이다. 집을 조금만 나서면, 건물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가 있다. 운치 있는 그 길을 통과한다. 차를 운전하며 출근하던 큰길에선 보이지 않는 호젓한 샛길이다.

그 길을 걸으며 길섶에 숨어있는 글감이 있나 곁눈질도 한다.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산토끼는 하얀 뒤태를 보이며 줄행랑 친다. 집과 회사 사이에 이렇게 고즈넉한 숲길이 있다니…. 감사할 일이다.

아내는 내 결정에 두 엄지를 추켜세웠다. 출근길에 나와 함께 운동 삼아 걸어 내려왔다가, 혼자 집으로 걸어 올라가겠다고 자청했다.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려는 속셈이었다. 가끔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가 나를 만나러 걸어 내려올 때면, 오르막길 중간에서 마주친다.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오솔길은 마냥 편안하다. 서로 터놓는 사이라서 그런가 보다.

동무 동무 어깨동무, 어디든지 같이 가고, 언제든지 같이 놀고…’전래동요 어깨동무의 한 소절이다. 어깨를 맞대고 같이 가고, 같이 놀 수 있는 동무를 가졌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이 아닐까. 친구와 동무는 같은 뜻인데, 순우리말인 동무에 애착이 더 간다.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의 길동무는 더욱더 그러하다. 누구나 친구는 많다. 그들 중, 길동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넓은 미국 땅일수록 사랑하는 가족들이 멀리 사는 경우가 많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함께 할 동무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은 부인끼리 자매이니 서로 동서지간이다. 모두 의사로서 은퇴한 후, 동부에서 시애틀로 이사를 왔다.

세계 곳곳을 함께 여행한다. 흔히 말하는 맛집도 찾아 다니며 즐긴다. 신앙 생활도 함께하고, 주방에서 부인을 위해 요리하는 것까지 똑 닮았다. 살아온 얘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발자취까지 풍부하게 나눈다. 두 분은 내게 전형적인 길동무의 모습을 넉넉하게 보여준다.

내 친구는 홀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원래 혼자 걷기를 계획했는데, 우연히 첫날 만난 친구와 함께했다고 한다. 40여 일을 함께 걷고, 먹고, 자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그 뒤,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서로 길동무가 되었다고 했다. 걷고 걸으면서, 다르게 살아온 각자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냈다고 한다

만일 처음 마음먹은 것처럼 홀로 걸었더라면 아마 마무리를 못했을 거라고도 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둘 사이는 수십 년 지기 못지않게 탄탄한 우정을 쌓고 있다.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친구의 개념도 공간을 초월한다. 나는 온라인 친구를 상상하면 어색하다. 친구는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나눠야 한다는 촌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그 아집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진 작가의 작품이나 수필가의 글을 온라인으로 자주 접한다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크다. 그럴 때면, 만난 적도 없는 이가 오래된 지기지우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그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큰 변화이다.

미국에 와서 사귄 절친한 친구는 나와 공통점이 없다. 직장생활만 하는 나와 달리, 그는 큰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한국문화권이지만, 그는 미국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와 함께하면 운동이나 여행을 할 때에도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가 친하게 된 이유 역시, 각자의 인생을 술술 풀어낸 덕이었다. 마음에 숨기는 것이 없이 드러내는 것, 바로 터놓는다는 것이야말로 진솔한 소통이다. 그것이 길동무로 가는 지름길이지 싶다.

누군가와 길을 함께 가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100세 시대란다. 먼 길, 함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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