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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8-22 09:49
[시애틀 수필- 김윤선] 손 님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027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손님

 
그날,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다리를 죽 펴고 앉았다. 입으로는 수다를 떨면서 손으로는 다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무릎이 한결 시원했다. 그러다가 무심코 왼쪽 무릎 뒤쪽에 손이 갔다. 그런데 어머나, 묵직한 응어리가 손에 잡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쏜살같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화장대 거울에 다리를 비춰 보았다. 내 흐릿한 눈으로도 툭 불거져 나와 있는 것, 그것이 혹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어림잡아 직경이 손가락 두어 마디는 될 듯했다. 얼마나 무뎠으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이렇게 자라도록 모르고 지내다니. 허탈했다.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혹을 발견한 게 이번만이 아니어서 호들갑을 떨 처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일순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병이란 늘 어느 순간, 감쪽같이 들어와 있지 않던가. 나이 들어가며 몸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이라며, 아파야 죽지, 쓸쓸하게 대꾸하시던 어머니 표정이 떠올랐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놈은 손님이다. 반갑지 않다고 나가라 할 수도, 덜렁 덜어낼 수도 없으니 별수 없이 안으로 맞아들일 수밖에. 그러나 한 순간에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뒤흔들며 고개 숙이게 하는 걸 보면 놈의 위세가 허세만은 아닌 듯싶다.

아버지가 종손인 탓에 우리 집엔 손님이 잦았다. 부산이 길목인 탓이었다. 철없던 때, 나는 손님들을 반겼다

북적거리는 소란스러움 속에 고향에서 묻어오는 갯내도 좋았고 고향사투리도 정겨웠다. 반찬의 가짓수가 늘어난 것도 좋았고, 과자 사먹으라며 내주는 종이돈도 좋았다. 저만치 놓여있는 보따리 속에는 때때로 군것질거리가 나오기도 해서 그 곁을 맴돌기도 했다

그런 밤이면 우리 식구는 으레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에서 함께 잤는데 자연히 두 분의 낮은 설전을 듣곤 했다. 손님에게 차비를 얼마나 줘야 하는가에 대한 설전이었다. 그러고 보면 시골손님이 어머니에게는 꼭 반갑지만은 않았을 게다.

섬이 대교로 이어지고 교통수단이 날로 발전하면서 우리 집을 찾는 손님도 예전 같지 않았다.

설사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도 누가 봐도 시골사람이라는 걸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던 촌스런 어르신네들이 아니었다. 시골사람인지 도시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쑥한 젊은이들로 바뀐 그들은 좁은 방에서 하룻밤을 비비던 옛 손님과는 달리 넙죽 인사하고 차 한 잔 홀짝 마시고는 그만 일어섰다. 그들의 손에 고향의 갯내나 작물이 들려있을 리 없었다.

내 몸의 손님 또한 손에 고향의 갯내는 물론 먹거리 하나도 없는 터, 놈이 쉬 눈에 띄지 않는 무릎 뒤쪽에 자리를 잡은 건 딴엔 분수를 지킨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온 기색은 있어야지. 사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왼쪽 다리가 무겁고 아프긴 했어도 으레 무릎관절염 정도로 여겼다.

언젠가 건강검진을 하면서 무릎 통증을 호소하자 의사 역시 관절의 병으로만 인식했지, 뒤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덕분에 놈은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옳다구나! 놈이 제 몸 피를 늘인 걸 어찌 탓하랴.

뒤돌아 서있는 내게 의사 대신 간호사가 얼굴을 보인다. 어쩜 이 크기에 이르도록 느낌이 없었느냐는 표정이다. 나는 속으로 대꾸한다. 너희가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무엇을 보았니? 의사가 말한다. 일단 혹의 물을 빼고 다시 물이 차는지 기다려 보다가 재발하면 외과수술을 하잔다. 혹의 내용물이 악성은 아닐 듯싶지만 검사를 해보겠단다

돌아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손님이기는 하나 차비 줄 일은 없으니 남편과 설전 벌일 일은 없겠다고. 불현듯 놈이 밥값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어디에라도 생길 수 있는 것인데 나라서 이만하지, 아니면 어쩔 뻔 했느냐고 대들면 어쩔 것인가. 뿐인가,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세상의 것들은 다 나름의 몫이 있음에랴. 비록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도 말이다. 유방암 검사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허방을 짚기 전에, 나는 슬그머니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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