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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3 15:40
[이기창의 사족] 하버드大가 78년 간 추적한 삶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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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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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 뉴스1 편집위원>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도 존재한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긴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이처럼 간단하게 정리한 설명도 없을 것 같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해서 생겨나고 존재한다. 처음부터 홀로 뚝 떨어져서 생겨나거나 존재할 수 없다. 나(我) 역시 네가 없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남 또한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은 이처럼 서로 의존적이다.
우리는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이름 하여 인연이다. 원래 이 말은 불교용어가 아니다. 중국인들은 불교전래 이전부터 이 말을 써왔다고 한다. ‘연줄, 연고자, (줄을 잡을) 기회’의 뜻으로 부정적 의미가 더 강했다. 불교전파이후 인연이 연기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관계의 6단계(six degrees of separation)’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1967년 ‘좁은 세상 실험(small world experiment)’을 토대로 확립한 이론이다. 일종의 연기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서로 수만리 떨어져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여섯 명만 연결하면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이웃이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그의 실험은 마이클 구어비치의 박사학위논문 ‘사회적 네트워크’(61년)를 발전시킨 것이다.
‘관계의 6단계’는 우연히도 할리우드 스타 케빈 베이컨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나는 할리우드의 모든 사람과 영화작업을 해왔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한 MTV가 2007년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Six Degrees of Kevin Bacon)이라는 제목으로 마련한 오락프로그램에 그를 초대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몇 단계를 거쳐 그와 연결되는가를 알아보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거짓말처럼 할리우드 배우 대부분은 2~3단계만 거치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됐다. 물론 할리우드가 상대적으로 좁은 세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필자도 그가 출연한 영화 ‘아폴로 13호’ ‘JFK’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을 케이블TV로 본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아주 흥미진진하고 의미가 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착수된 실험이니 올해로 무려 78년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조사는 ‘하버드대의 성인생애발달연구(The 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 프로젝트이다.
조사는 보스턴에 사는 청소년 724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하버드대는 빈곤지역에 사는 청소년과 당시 하버드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청년, 두 그룹으로 나눠 2년마다 방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대상자의 직업, 건강, 결혼과 가정생활, 사회적 성취, 친구관계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이뤄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인으로 성장한 이들은 사회 각 분야에 진출했다. 공장노동자와 벽돌공에서부터 의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빈곤층 청소년 중 일부는 삶의 사다리를 타고 상류층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버드대 졸업생 중에는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다(존 F. 케네디). 이 조사와 더불어 724명의 자녀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추가조사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조사시작 때 대상자들이 밝힌 삶의 목표는 대부분 부와 명예였다. 하지만 이들이 50세 이후에 이르렀을 때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비결이 정작 다른 것에 있음이 밝혀졌다. 바로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이었다. 우리말로 관계 또는 인연에 해당하는 말이다. 당연히 좋은 관계맺기가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의 비결이었다. 애정이 돈독한 부부, 늘 대화가 가능한 자녀, 친밀한 이웃사촌, 마음을 터놓을 친구의 존재여부가 이들의 삶을 좌우한 요소로 입증됐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는 부차적인 조건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 연구의 4대 책임자를 맡고 있는 심리학자 로버트 월딩어 박사는 이렇게 들려준다. “사회적으로 좋은 접촉(인연)은 행복과 장수의 으뜸 조건임이 확인됐다. 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수명이 길었다. 사랑이 결핍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삶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외부와의 단절, 고독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데 있어서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건강도 시들고, 뇌의 기능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결국 일찍 삶을 마감했다.”
세상은 이처럼 홀로 살 수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곧잘 잊고 지낸다. 저마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무게중심을 둔다.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순간, 두 번째 기회가 거의 없는 우리네 삶이라 더욱 그럴 것 같다. ‘남이 나를 그리워하게 할지언정, 남이 나를 유감으로 여기게 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옛 사람의 말을 새삼 음미해본다. 그런 삶이란 배려와 나눔이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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