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해 수필가(시애틀문학 편집인)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무림의 양대 문파, 스마트 워치와 로봇을 격파하고 강호를 평정한 최강자는 스마트 폰이다. 연
전만 해도 세상은 양대 문파가 지배하리라 예측됐고 스마트 폰은 호사가인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무림, 유비쿼터스의 지배자는 단연 스마트 폰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여기엔 두 지파의 공(?)이 크다. 먼저 제품 개발자들.
그들은 촌각을 다투며 신상품을 개발해 세상 재화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편리와 속도(=지혜)라는 우상을 섬기는 소비자들.
그들은 소비 당하는 줄도 모르고 기꺼이 앞장서 지갑을 연다. 이에 세인은 뒤질세라 그들
뒤에 가 줄을 선다. 하여 지구상에 새로운 재화(財貨)가 등장했다. 세계 부자 순위만 훑어보아도 이는 금방 식별된다.
해서 개발자들은 제현이 원하건 말건
혈안이 돼 더 색다른 병기(?) 개발을 위해 총력을 가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개발자들에게 욱여쌈당하는 줄도 모르고 결정 장애까지 겪으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말인 즉
지혜로운 소비를 위해서라나. 과거 부동산 개발이 경제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컴퓨터가 아예 개인을 지배한다.
최근 증강현실(AR)을 즐기는 게임이 전개를 이끌어 가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IT기기는
이처럼 거듭된 변화로 어느덧 현실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에 이르게 했다. 기업 대표들은 신제품 시연을 통해 꿈이 열리는 느낌을 받는 단 평가를 SNS에
쏟아내며 발전한 기술과 과학이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 득의양양해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꿈의 실현이며
삶이 풍요로워지는 길일까.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치료되지 않는 환자의 이야기다. 제목만 보고는
사이보그임을 허용한다는 것으로 읽히지만 실제의 내용은 그 반대다. 역설을 짚어낸 것이다.
어느 일에나 역기능은 있다. 최근 일본에서 교환 설비 이상으로 270분간 스마트 폰이 불통됐다. 재난 강국 일본도 패닉을 못 막았다는 호들갑스러운 기사가 세계로 타전됐다. 그
얼마 전 한국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기자는 썼다.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석기시대의 컴백’을 보며, 나는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라는 대담한 선언에 한층 공감하게
됐다. 손에 장착된 듯 맨날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먹통 돼, 늘
연결돼 있던 네트워크로부터 강제 분리되고, 뇌의 기억력 장치를 분담 대체해주던 인터넷검색, 내비게이션 기능 등등이 마비되자, 우리는 마치 기능장애가 온 사이보그처럼
갈팡질팡했다.”라고.
그는 계속해서 썼다. “몇 년 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라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 그는 실제로 인간 뇌와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하기 위한 연구 법인 ‘뉴럴링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나아가 미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이미 1985년에 ‘사이보그
선언문’을 발표했단다. 유기체(인간)와 기계가 결합한 존재를 인정해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이며, 또 사이보그가 되자’라고. 그가 사이보그 정체성을 긍정하는 이유는
그간의 성별 인종 등의 차별적인 경계와 구분을 초월해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 기자는 우려를 표한 뒤, 우리가 이미 사이보그임을 자각하고 어떤 사이보그로 인류를 설계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고 글을 매듭지었다.
아차! 미셸 푸코가 <사물과 언어>에서 인간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그 ‘때’가 된 걸까? 해서
어느덧 호모사피엔스의 역사가 종언되고 사이보그 역사가 열린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이미 기계가 됐다? 진화의 끝이 사이보그라고?
그럼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찌
될까. 팔과 다리, 장기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거나 ‘뇌 임플란트’ 기술의 발전으로 뇌 속의 데이터를 컴퓨터와 연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그의 영혼은?
요즘 과학에선 두뇌도 물질이라고 한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믿고 있는
생각과 감정, 기억 등의 실체도 뇌의 화학 작용일 뿐이어서 육체와 다를 게 없다고. 하면 인간의 뇌를 로봇에 이식한다면 그는 사람일까, 로봇일까. 사후에 영혼 위에 기계를 달고 나타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맞이하실까. 예언의
적그리스도가 컴퓨터일까.
이게 꿈이라면, 아니 무협 소설의 가공된 얘기라면 좋겠다. 일이 이쯤 됐는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기계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선택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도? 인간이 존엄하다는 당신, 기계가 될 때 되더라도 인간 독립 선언은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지. 선열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만주로 떠났다면 기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어디로 떠나야 할까.
주머니 속의 컴퓨터, 스마트폰 사용을 거부하는 날 힐난하는 분들께 질문하고 싶다. 저항
한번 못해보고 인간이길 포기해,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맥없이 이 대로 사이보그가 될
것이냐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유라는 숨좀 쉬고 살면 안 되느냐고. 아! 기계를 누린다 하고 침공만 허용한 인간들이여, 세기말(인간세)적 고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