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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31 01:04
[시애틀 수필- 안문자] 조카의 결혼식 날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842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조카의 결혼식 날
 
, 마침내 배필을 찾았구나!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준비해두신 짝이 없을 리가.

결혼예배의 시작과 함께 구물거리던 하늘에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축복이 내리는 것처럼.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안고 있던 하객들은 일제히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온 식구가 그렇게 바라던 큰 조카의 결혼식 날이다. 신랑의 엄마인 내 언니는 이제나, 저제나 안타까운 얼굴로 혼기를 놓친 듯한 노총각을 바라보다가 아이고, 이젠 나도 모르겠다. 두 손을 번쩍 들며 단념 아닌 단념을 하고 나니 그제야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결혼은 때가 있나 보다. 결혼뿐이겠는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

조카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신들린 것처럼 용감하지만 여자 앞에서는 부끄럼쟁이였다. 여자들이 말을 붙이면 두리번거리다가 슬그머니 뺑소니치길 잘했다. 아니 저래서야 어디 장가를 가겠나? 꾀나 놀림을 받았다.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의 안목을 가지고 자기에게 맞는 여성을 찾았나 보다. 자기가 선택한, 오늘의 신부 앞에서는 당당하고 멋있다. 아무렴, 좀 늦었지만 하나님이 정해두신 반려자를 만났음에랴.

스노퀄미 골프장의 산과 산을 이어주는 계곡들은 초록색으로 물이 들어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당당하게 서있는 신랑 앞으로 새하얀 면사포와 웨딩드레스에 감싸인 신부가 음악에 맞춰 사뿐 사뿐 들어올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하는 남녀 한 쌍이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서약하는 엄숙하고 거룩한 의식은 우리 인생에 가장 뜻 깊고 복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마음 가득 축하를 담아 그들이 오래 오래 행복하길 기도 했다.

어느 해,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렸다. 어머니는 제일 큰 손자의 세배를 받으실 때마다 장가를 가라고 하셨는데 그 해에는 마음이 급했던지 환하게 웃으시며 새해에는 꼭 새 장가 가거라!”고 하셨다. 세배를 기다리며 둘러 서있던 우리들은 으하하하, 박장대소. “그래, 새 장가 가라. 헌 장가도 못 갔는데 새 장가라도 가야지.” 할머니는 너무 늦어버린 손자의 결혼에 조바심이 나서 헛말이 나왔던 것이다. 그 후에도 우리들은 늘 새 장가 가라고 놀렸다.

결혼식엔 멀리 흩어졌던 우리 형제들의 자녀인 신랑의 사촌들이 몰려왔고, 반가운 하객들은 신랑의 늦장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시애틀의 낯익은 성악가의 축가와 사촌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 주례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 늠름한 들러리들인 사촌들의 스피치,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꽃들과 훈훈한 덕담, 여기저기서 짓궂게 유리컵을 두드리는 딩동댕 소리신랑신부의 최고의 날을 함께 기뻐하며 흥겨워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흐뭇한 설렘으로 아름다운 신랑신부를 바라보다가 결혼식에만 가면 생각나는 K교수님의 주례사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제자의 결혼식에서 간절히 말씀하셨던 주례사다.

그는, 행복한 가정의 조건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제시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부의 사랑은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에로스는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 아가페는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가페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라고도 하셨다. 아가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방법이므로 사람들도, 부부들도 이런 사랑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나는 이 분의 주례사를 최고의 주례사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오늘의 신랑신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가정의 평화는 이런 사랑으로 오는 것이고 이런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조건이 될 것이기에.

나는 우리들의 피붙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의 후손들이 밝고 듬직하게 성장했구나. 어릴 때의 모습이 사라지고 성년이 된 그들이 낯설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서로 어울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그들은 희망의 샛별들이다. 세상의 미래다. 형형한 빛으로 변하며 발전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너희들이 장래의 주인공이란다.

조카의 결혼식 날은 초록빛으로 물든 생명의 풋풋한 향기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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