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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9 03:25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과’이고 싶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576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이고 싶다

 
큰 다리를 건너는 중간쯤에서 차창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바다의 숨결에 마음이 씻기는 듯하다. 흐트러지는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가 멋진 둘째를 생각한다.

오래 전 어느 여름, 첫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무대에 서는 배우이기보다는 무대 뒤에서 조명을 비추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나는 무슨 말인가 하려 다가 차마 하지 못한 채 돌 하나 꿀꺽 삼키고 말았다.

저는 다윗도, 요나단도 아닌 이고 싶습니다.”

선문답과도 같았다.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복음성가 가수가 온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당연히 두 사람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한 사람만 기타를 들고 나타났다

다윗이 온 것인지 요나단이 온 것인지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다윗도 요나단도 아니라며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찬찬히 노래를 시작했다. 기타 반주에 실려 나오는 음성에서 바람의 깊이가 느껴졌다

빛 바랜 체크무늬 상의가 먼 길을 함께 걸어온 오랜 친구처럼 편해 보였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기 위해 바람처럼 사는 그가 행복해 보였다.

내 나이 한창 푸르던 때, 무엇과 무엇을 잇는 가 되기보다는 무엇이 되기를 원했다. 보이는 무엇들만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무엇이 되지 못해 상실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는 그와 손을 맞잡아 우리가 되었다. 이후로 점점 커져가는 삶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의 자리로 옮겨가야 했다

그곳은 침묵과 고통의 자리이기도 했지만, ‘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사의 자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설익은 내 그림자는 우리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산길을 걷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개울을 만났다. 그냥 건너면 발이 젖을 듯한 개울 한쪽에 낡은 나무다리가 바짝 엎드려 있다. 오랜 세월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 몸을 내어주며 험한 산길을 잇고 있다. ‘이다. 흐르는 물과 스치는 바람을 친구 삼아 다리는 귀를 열고 마음을 나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물에게서 너그러움을 배우고, 막힘이 없는 바람에게서 자유를 배운다. 그래서 다리는 의 자리가 행복하다고 지나가는 바람이 내게 전해준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친구이며, 이웃이란다.

와 같은 친구가 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커피향이 아닌 은은한 차의 향기를 맡는다. 온기를 나누어 주는 따뜻한 찻잔 같은 사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문제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헝클어진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늘 사람이 모인다

그녀는 가슴에 화롯불 하나 피워 놓고 사는 것 같다. 따뜻한 화로 곁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잘 구워진 고구마처럼 말랑해진다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게 조용히 마음을 데우는 그녀. 모나고 뾰족한 들을 이어 우리를 이루어가는 친구가 아름답다.

세월의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강가에 피어난 작은 들꽃과 흙을 붙들고 있는 잔뿌리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달어가는 요즘이다. 언뜻 보기엔 무엇들만 있는 세상 같지만, 정작 세상을 붙들고 있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들이다.

금문교가 보이는 곳에서 사는 딸아이는 아직도 그 마음 잃지 않고 있을까. 그때 가슴에 박힌 돌이 이제는 내 안에서 꽃씨처럼 느껴지는데. 잔잔한 꽃향기 길에 남기며, ‘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다리를 건넌다. 도심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작은 다리와 큰 다리, 두 개의 다리는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생존을 위한 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다리가 끝난다. 십 년이 넘게 다리를 건너 다녔는데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무서운 건 여전하다

언제쯤 저 바람처럼 자유롭게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무엇이고 싶은 마음 다 내려놓고 의 오롯한 행복에 가슴 벅차 오르는 날, 그때 쯤이면 이 무섬증을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슬이 곱다. 아침 바다에 내리는 은빛 햇살이 세상에서 로 살다간 착한 사람들의 영혼처럼 느껴진다. 다리가 끝나는 곳에 길이 열리고 있다.

나도 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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