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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2 02:01
[신앙과 생활-김 준] 분노에 대하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914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분노에 대하여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능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를 발하게 되는 동기는 대부분 누군가가 우리에게 물질적,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피해와 고통을 줄 때 발생합니다.

때문에 이기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피해와 고통에 민감하여 분노를 저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발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식욕이나 성욕 같은 본능과 마찬가지로 분노도 자기 보호를 위해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를 무분별하게 발산시킬 것이 아니라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제어 장치를 통하여 분노를 자제하는 데에 인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간혹, “나는 화를 잘 내지만 곧 가라 앉는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토네이도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동안에 엄청난 피해를 남기게 됩니다. 우리들은 대인관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좋은 유대관계가 한 순간의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교훈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나으니라.”(16:32)

분노를 발하는 행위는 강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망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성인간의 차이점은 자제력에 있다고 볼 때 성인이라면 감정적으로 미숙하고 절제력이 부족한 어린이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로 돌아갈 때 대상 없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실패라든가 마음의 상처 등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우리에게 해준 이가 있습니까.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면제시켜 주겠다는 보장을 그 누구로부터도 받지 않은 이상 우리에게 그러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분노를 발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래 전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에 대하여 남긴 조언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누구나 다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꼭 화를 내야할 사람에게 화를 내고, 알맞는 정도로 적당히 화를 내고, 적절한 때에 화를 내고, 정당한 목적 때문에 화를 내고, 올바른 방법으로 분노를 나타내야 한다.”

그가 남긴 조언대로 실행한다면 분노는 부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겁입니다.

분노를 사분(私憤)과 공분(公憤)으로 구분해볼 때, 사분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반면에 공분은 인간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사분이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발동되는 것이라면 공분은 사심 없는 이타적인 감정에서 나타나는 분노입니다.

우리는 선이 악에게 패배를 당할 때 분노를 느낍니다. 정의가 불의 앞에 굴복 당할 때 분노를 느낍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압제를 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하는 바로왕에게 분노했습니다. 링컨은 노예제도에 분노했습니다. 419혁명은 부정 선거와 부정 부패에 분노한 국민의 봉기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공분을 나타내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과 형식주의로 백성을 오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분노하셨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타나 있는 모든 악은 그 악을 보고서도 분노하지 않은 채 방치했기 때문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능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를 발하게 되는 동기는 대부분 누군가가 우리에게 물질적,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피해와 고통을 줄 때 발생합니다.

때문에 이기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피해와 고통에 민감하여 분노를 저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발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식욕이나 성욕 같은 본능과 마찬가지로 분노도 자기 보호를 위해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를 무분별하게 발산시킬 것이 아니라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제어 장치를 통하여 분노를 자제하는 데에 인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간혹, “나는 화를 잘 내지만 곧 가라 앉는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토네이도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동안에 엄청난 피해를 남기게 됩니다. 우리들은 대인관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좋은 유대관계가 한 순간의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교훈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나으니라.”(16:32)

분노를 발하는 행위는 강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망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성인간의 차이점은 자제력에 있다고 볼 때 성인이라면 감정적으로 미숙하고 절제력이 부족한 어린이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로 돌아갈 때 대상 없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실패라든가 마음의 상처 등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우리에게 해준 이가 있습니까.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면제시켜 주겠다는 보장을 그 누구로부터도 받지 않은 이상 우리에게 그러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분노를 발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래 전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에 대하여 남긴 조언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누구나 다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꼭 화를 내야할 사람에게 화를 내고, 알맞는 정도로 적당히 화를 내고, 적절한 때에 화를 내고, 정당한 목적 때문에 화를 내고, 올바른 방법으로 분노를 나타내야 한다.”

그가 남긴 조언대로 실행한다면 분노는 부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겁입니다.

분노를 사분(私憤)과 공분(公憤)으로 구분해볼 때, 사분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반면에 공분은 인간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사분이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발동되는 것이라면 공분은 사심 없는 이타적인 감정에서 나타나는 분노입니다.

우리는 선이 악에게 패배를 당할 때 분노를 느낍니다. 정의가 불의 앞에 굴복 당할 때 분노를 느낍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압제를 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하는 바로왕에게 분노했습니다. 링컨은 노예제도에 분노했습니다. 419혁명은 부정 선거와 부정 부패에 분노한 국민의 봉기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공분을 나타내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과 형식주의로 백성을 오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분노하셨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타나 있는 모든 악은 그 악을 보고서도 분노하지 않은 채 방치했기 때문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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