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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2 01:04
[신앙과 생활] 낙타는 삼키면서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37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낙타는 삼키면서

충청도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유한 농민이 도박에 빠져 가산을 조금씩 탕진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아 날리다가 마지막 남은 집문서까지 가지고 가 최후 승부를 겨루다가 끝내 그 집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길가에 나뭇가지들이 늘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살림에 보태려고 그것들을 주워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농민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들에게 잡히신 후 곧바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몇 가지 종교적인 죄목을 부과했지만 그들이 예수를 종교재판으로 처형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을 뿐 아니라, 군중들의 과격한 반응 등 예기치 않은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종교적인 죄목보다는 로마 황제 모독죄나 군중 선동죄 같은 정치적 죄목을 붙여 로마정권으로 하여금 예수를 제거시키게 할 요량으로 예수를 총독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영역인 총독의 뜰을 밟는 것은 부정을 타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음날 유월절 행사를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 그 뜰 안으로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안 빌라도가 직접 그 무리들 앞으로 가서 그들의 청원을 들었습니다.( 18:28)

이방인의 뜰을 밟는다고 몸과 마음이 갑자기 더러워질 리가 없는 것이고, 다만 단정하고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유월절을 맞기 위한 상징적인 가벼운 규례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은 그토록 철저하게 엄수하면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갖 음모를 꾸며 죽이려는 그 엄청난 죄악을 획책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입니까.

가옥과 전답을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린 사람이 버려진 나뭇가지를 살림에 보태려고 주워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와 유사한 일들이 지금 기독교에서 교단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토록 죄악시하는 동성애 문제를 교단이 앞장서서 용인하고 있으면서도 경미한 규례는 유난히 강조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물론 작은 규례라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거나 역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아무런 가책 없이 거짓을 말하고, 권모술수를 거침없이 자행하면서도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지요. 물론 새벽기도회에 늘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거짓 없는 정직한 언행이요, 그릇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닌 선으로 악을 극복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의 허물과 사생활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다니면서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을 자랑삼고 있지는 않는지요

물론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봉사활동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고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23:23~24)

외식하는 자들이 잘 실행한 것은 십일조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버린 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낙타만큼이나 큰 것인데 그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꿀꺽 삼켜버리면서 하루살이만큼이나 작은 십일조 바치는 일에는 신경을 쓴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하찮은 규례에는 민감하면서도 크고 중한 계명에는 맹인이 될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재물이든 지위이든 명예이든 쾌락이든 어떤 이해관계에 따른 욕심이 앞을 가리고 있는 동안에는 일의 경중도, 정의와 불의도, 심지어 선과 악까지도 올바르게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 분별은 하면서도 욕망에 이끌리어 고의적으로 정도(正道)와 진리를 무시하고 역행하는 데에 죄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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