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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6-08 22:15
[신앙과 생활] 성격 변화 가능한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441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성격 변화 가능한가

 
사람은 누구나 연륜과 함께 변합니다
얼굴 모양도 변하고 몸매도 변합니다. 말이나 행동도 변하고 취미도 변합니다. 기억력도 상상력도 이해력도 그리고 사상까지도 변합니다. 이처럼 인간에게서 모든 것이 변해가지만 유독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타고난 성격입니다.

그래서 흔히 변하지 않는 좋지 못한 성격을 안타까워 하면서, ‘타고난 성격인걸 어쩌겠는가라고 체념을 하기도, 또 성격이 변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저 성격만 바꾸면 팔자가 바뀌련만…’하고 탄식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 차이 때문에 서로 갈라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성격의 차이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다만 서로 맞지 않는 성격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고쳐갈 수 있는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나는 저런 성격이 마음에 안드는데하지만 내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사소한 성격 정도야 쉽게 고쳐가겠지…’ 이렇게 성격 변화를 대단히 용이한 것으로 여기고 결혼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격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에게 그들의 성격을 바꾸라는 충고 대신 상대방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라는 말이 최선의 조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성격은 절대로 고칠 수가 없기 때문에 주어진 성격 그대로 지니고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고칠 수 있고 또 반드시 고치고 변화되어야 한다라고 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ㆍ속죄ㆍ중생ㆍ거듭남ㆍ새사람 등은 모두 인간성의 변화, 즉 인간의 전인적(全人的)인 갱생을 의미하는 어휘들이고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처럼 새롭게 거듭나는 중생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어떤 지식이나 지혜나 재능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격에 기록된 사도 바울을 비롯한 수 많은 인물들과 최근 우리나라 김익두 목사를 비롯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유명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난 그 불가사의한 변화들이 모두 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간증하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인의 변화를, 물오리들이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이동해 가는 것과 같은 수평적인 이동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러기가 되어 창공을 날으는 것과 같은 수직적인 이동이라고 했습니다

물오리들이 땅 위에서 자리바꿈이나 하면서 다투듯이 누가 더 잘하고 잘못했는가, 네가 옳은가, 내가 옳은가 하는 세속의 기준을 초월해서 새롭게 탈바꿈하여 높이 높이 비상하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를 희망의 종교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변화되고 중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거듭날 기회가 완전히 두절되어 있다면 그것은 절망이요, 허무요, 생의 끝장일 것 입니다. 왜요? 그것은 주어진 대로 살고 되는 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포자기의 삶이요 희망이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단테가 쓴 신곡(神曲)의 지옥편을 보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런 글이 붙어있습니다. “여기로 들어가는 너희들, 모든 희망을 다 버려라

그렇습니다. 희망이 끊길 때 절망이 오고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문제는 변화입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중생의 변화가 나타날 때 기쁨도 감사도 평화도 사랑도 자연히 따르게 될 뿐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도 그 중생의 결과로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중생의 변화를 간절히 갈구한다면 그 기원은 반드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그 누구에게나 생명이 흐르고 있는 한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일관되게 주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 입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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