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칼럼니스트)
가상, ‘복권 당첨 이후’
오래
전 내가 잠시 다닌 직장에 있던 30대 중반의 마이클 이라는 청년은 유난히도 복권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당첨금 500만 달러짜리 복권을 사 놓고는
행여나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지나가는 말로 당첨이 되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많을 거라고
하자 그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우선
당첨이 되면 그날부터 지나치게 흥분되고 긴장이 되어 여러 날 잠을 설치게 될 겁니다. 자연히 심신이
피로해져 건강에 이상이 올 수도 있겠지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
다음은 당신의 직장 문제 인데요. 지금까지는 당신이 근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봉급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왔지만 500만 달러를 얻게 되면 직장 일에 열의와 의욕이 줄어들 것입니다.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직장에서도 당신의 그러한 무성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 자신도 더 이상 직장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아 결국엔 직장을 그만 두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생활이 불규칙 해지고 삶의 리듬은 깨지게 될 것입니다.”
마이클은
처음과는 달리 내 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또 다른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당신네
친척,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 이런 저런 일로 당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해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 줄 수는 없겠지요. 더러는 거절도
하고 또 더러는 부분적으로 응해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절 당한 사람은 물론,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한 사람도 불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나 위문이나 혹은 어떤 선물을 할 때 그전 같으면 카드 한 장만으로도 감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당신이 웬만큼 값진 선물을
주어도 흡족해 하지 않고 오히려 야속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이래 저래 가깝던 사람들도
하나 하나 멀어지게 됩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혹시 또 있습니까?”
“또
있지요. 일반적으로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술과 섹스와 마약입니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치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는 예는 극히 드물거든요”
그는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물었습니다. “당신 혹시 이전에 복권을 타 본적이 있나요?”,
“아니오, 한 번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추측이지요. 하지만 적중률이 높은 추측입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나는
그가 미혼인줄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 한 마디를 더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거액의 복권을 타게 되면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전 같으면 결혼 대상자가 당신의
인격 자체만을 보고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선택하겠지만 당신이 수 백만장자가 되고 나면 아무래도 당신 자신보다 당신의 소유에 더 비중을 두고 접근할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요. 그래서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순수성을 가지고 당신을 대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러자니 복권에 당첨되기 전보다 결혼 대상자를 선택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마는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돈을 교회에 헌금으로 바친다든가, 자선단체 같은 곳에 기부를 하게 되면 얼마든지 유익하게
쓰여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불로소득으로 얻은 돈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까요? 헌금이란 적더라도 나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을 바칠 때 헌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도 그래요. 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드려 얻은 것을 기부할 때 기부로서의 가치가 있고 또 당신 자신도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치 당첨된 500만 달러를 포기라도 하는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참고 될 말 잘 들었습니다” 하면서 돌아섰는데, 그의 어깨가 축 늘어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선량한 소시민이 품고
있는 한 가닥 꿈을 깬 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조용이 스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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