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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26 16:56
[시애틀 수필-공순해] 수필과 수필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400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수필과 수필가
 
 
일전에 서류 작성하다 직업란에서 막혔다. 과거엔 자영업자라 써넣었지만 이젠 뭐라 써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분이 조언했다. 수필가라 쓰세요. 멋진 직업이잖아요. 수필가? 딴은 그럴듯하다. 수필을 업으로 삼았으니 수필가 맞긴 맞다. 잠깐 유혹으로 중심이 흔들렸다. 하지만 직업이란 생업을 말하는 것, 수필 써서 밥벌어 먹고 사는 건 아니니 직업이라 할 수 없다. 점잖게 유혹을 물리치고 그냥 공란으로 둘 밖에.

수필로 업을 삼고도 자신을 수필가라 소개해본 적 없으니 타칭 수필가가 된 셈인데, 이 일이 좀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분은 자칭타칭 시인 수필가가 넘쳐나는 사회현상 속에 별 부담 없이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에 취미(?)가 있다 하면, 무관에게도 그저 시인이든 수필가든 수식어를 붙여주는 세태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제대로 이런 칭호를 사용하려면 이에 걸맞은 노력과 고통을 지불해야 한다. 문단 라이선스인 등단 순서도 거쳐야 하고, 쓰기의 뼈아픔도 경험해야 한다

만약, 원관념과 보조관념도 모르며 행과 연의 개념도 모른 채 시인이란 이름 듣길 두려워하지 않고, 수필의 형식이 무형식이라 했다고 진짜로 형식 없이 붓 가는 대로 써대며 수필가란 명찰을 달려 한다면, 시인 수필가란 칭호를 너무 얕잡아보는 게 아닐지…

고단한 세상, 쉽게 가지 그래,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쉽게 갈 일이 따로 있다. 아무리 쉽게 굴러가는 세상일망정 그 어느 한 곳에 엄정한 벽이 세워져 있어야 그나마 세상이 바로 굴러갈 수 있는 것처럼 문학도 예술이란 버거운 굴레를 감수해내야만 한다.

수필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있다. 발전 변화하는 세상에 수필이라고 그냥 있겠나. 전엔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 했지만, 이젠 창작수필이 대세다. 무형식이 형식이라 배웠지만, 지금은 형식이 없어서 무형식이라는 게 아니고, 문학 장르의 어느 형식이나 차용할 수 있어서, 그 형식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뜻의 무형식이란다. 하기에 혹자는 수필이 문학의 모든 장르를 통섭할 시대가 올 것이라 장담하기도 한다. 이 점이 오늘날 수필의 매력이다.

아니, 매력이자 굴레다. 수필의 주제를 형상화해 재창조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가 어렵다는 게 형상화 때문이니, 수필의 형상화는 더욱 어렵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주제를 형상화해 재창조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는 전문영역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이 괜히 생기겠나.

해서 심지어 수필 비평가 사이에서도 이 형상화를 잘못 이해하고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다. 주제를 살리기 위한 창작의 흔적도 없는 수필을 형상화가 잘 됐다고 주례사 비평할 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는 그간 신변잡사를 부담 없이 나열한 글을 수필이라 해온 편안한(?) 관행 때문이다.

어느 예술품이나 긴장미를 갖춰야 감상자의 정신이 활성화돼 삶을 쇄신시킬 수 있다. 질서를 재창조하지 않은 예술품, 작가의 숨죽인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 예술품은 도금된 예술이다. 결코 예술은 편한 작업이 아니다. 수필도 그렇다. 심지어 일반 수필이라도 필자의 독창적인 견해, 인문적 소양이 드러나야 수필의 반열에 오른다.

이렇게 까다로운 게 오늘의 수필이라면, 하면 우리가 평소 편하게 읽고 쓰고 즐기는 수필은 대체 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대학교실에서 배울 땐 이를‘수필 양식의 것’이라 배웠다. 문학의 장르를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으로 분류한다면, 그럼 그 나머지, 글로 이루어진 모든 형태를 뭐라 불러야 하나. 이를 다 뭉뚱그려 수필의 범주에 넣으며, 광의의 수필이라 한다

심지어 칼럼 기사문 실용문 광고문까지도. 양주동식으로 말하면, 시 소설 희곡을 뺀 나머지 우수마발이 다 수필야(隨筆也). 이렇게 광역의 문학이 수필이니 수 많은 오해도 생겨났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수필가는 레벨 떨어지는 문인이라 낮잡아보는 것이다. 낮잡아보는 시인 소설가들께서 수필을 고통 없이 쓰기에 그렇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필, 고민 없이 쉽게 쓰여지는 글이 아니다. 정신을 벼리며 창작을 위해 고민하지 않은 글은 문학이 아니기에. 시인 소설가들이 쓰는 산문, 그거야말로 잡문이다. 하기에 지금 이 글도 잡문이다. 수필가가 쓰는 잡문. (하지만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 잡문으로 분류되는 점에 대해선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수필의 구성과 형상화에 대해 오늘도 나는 엄살부리며 고민한다. 수필쓰기 참 힘들다. 쓰기 힘들어 도망쳐왔던 소설로 되돌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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