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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0 15:30
[시애틀 수필-정동순] 시애틀의 정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966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시애틀의 정글

 
오늘도 거기에 그가 있다. 무릎에는 두툼한 책이 펼쳐 있다. 등받이도 없는 낡은 간이의자가 그의 큰 덩치에 눌려 아슬아슬하다

오랜 가뭄에 누렇게 마른 잡풀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갈색 곱슬머리, 구레나루가 덥수룩하다. 그의 큼직한 이목구비에도 고속도로 가로대처럼 오랫동안 먼지가 눌러앉은 것 같다.

문인협회 월례회에 가는 길, I-5 고속도로 174번 나들목이다.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내 차는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올 들어 몇 번째 똑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보았다. 젊다. 옆에 놓인 “Homeless Help” 팻말이 아니라면 행위예술을 하는 젊은 예술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의 무릎에 놓인 책에 눈길이 간다. ‘저이가 정말 책을 읽고 있을까?’ 순간 보란 듯이 책장이 넘어간다. 지갑 안에 액수가 적은 지폐가 있는지 가늠해 본다. 일 불짜리 몇 개가 잡힌다. 

‘아니지, 주지 말라고 했지.’ 한 잔의 커피값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그를 볼 때마다 갈등한다.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돈을 주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늘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의 상황을 종료시키는 구세주처럼 신호가 바뀐다. 앞차의 꼬리를 물고 재빠르게 좌회전한다.

어느 날, 마을의 산책로 끝에 있는 마트에서 간단한 식재료를 사고 나왔다. 이미 날은 어둑한데 출구 앞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미가 간절한 눈으로 한 푼 도와달라고 했다. 도와주지 않으려면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 

속는다 치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어미로서 어찌 그 장면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물건을 사고 남은 돈을 다 주었다. 적선(積善)이란 선을 쌓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런데 자초지종을 알게 된 가장한테 크게 혼이 났다. ‘그 여자는 구걸하기 위해 아이까지 이용한 거라고.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우리가 세금을 내는 거라고. 그 사람이 그 돈으로 술이나 마약을 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월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면의 갈등이 더욱 요동치는 시간이다. 시니어 아파트에 사는 선생님들을 모셔다 드리면 귀갓길은 자연스럽게 I-90로 연결된다

그곳은 I-5 고속도로가 맞닿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회전 램프(ramp)에 사람이 보인다. 차 앞으로 사람이 뛰어들까 더럭 겁이 난다. 발은 가속 페달 쪽에서 브레이크로 옮길 준비를 단단히 한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어디서 학습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힘줄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램프 사이의 빈 공터에는 텐트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도시의 먼지와 매연, 소음으로 가득 찬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집 없는 사람들의 거처다. 불빛이 가득한 시애틀 다운타운은 낮보다 화려하고 세련된 멋진 스카이라인을 뽐낸다

집 없는 사람들은 저 많은 불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어느 도시의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던 밤 풍경이 떠올랐다. ‘저 수 많은 불빛 가운데 내가 누울 한 평의 방이 없구나’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도시의 불빛은 꿈을 꾸는 모두를 따라 비추어 주지는 않는다.

다시 I-90, 우리는 매리너스 야구게임을 보기 위해 세이프코 필드에 가는 길이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 선 차들의 흐름이 답답하다. 창밖을 보던 아이가 소리친다.

”와, 저기 텐트가 많다. 우리도 캠핑가요!”

‘아가, 저 텐트들이 캠핑텐트라면 얼마나 좋겠니?

시애틀은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도시다. 그 사람들은 고속도로 주변 공터나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 그들은 그곳을 정글(The Jungle)이라 부른다. 

쓰레기 더미, 범죄, 마약과 술, 절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늘 그들 가까이에 있다. 어떤 사연으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에서 밀려났을까? 정글에 사는 사브리나를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다.

인생에서 가장 어여쁠 나이 스물셋. 4년째 다리 밑에 산다고 했다. 짧은 인터뷰 속에 그녀가 지나온 아픔과 고비마다 더 어긋난 이야기가 절절했다. 인터뷰하는 이가 세 가지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맺어보는 것, 마약을 끊는 것, 직장을 갖는 것” 집을 갖는 것, 일확천금을 얻는 것 등이 아닌,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해서 슬펐다.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떠도는 별이 되었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따뜻한 샤워, 깨끗한 그릇에 담긴 음식, 가족 간 안아주기,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룰 수 없는, 이루어지질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기도 하다. 

I-5의 174 나들목에서 만난 그 젊은이, 그의 헝클어진 갈색 머리가 저녁 햇빛에 흩날리는 모습이 자꾸만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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