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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1 13:18
[시애틀 수필-이한칠] 자연스러운 일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206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자연스러운 일

 
눈부시던 시애틀의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한다.

건넛집이 새 옷을 입느라 분주하다. 집주인은 입주자 협회(Home Owners Association)로부터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단다

거뭇거뭇한 집 외벽을 페인트칠하라는 통보였다. 같은 단지 내의 모두 9년 된 집인데, 나는 그 통보를 받지 않았다

그 사실이 큰 자랑인 듯 내 심사가 얄궂다
우리 집 벽면을 흘낏 보니 건넛집보다 양호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틈에 새 페인트로 갈아입은 집들이 얌전하다

나도 우리 집의 나이가 여덟 살이 되면 단장해 줄 계획이었는데…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는 말이 떠오른다. 나이는 나만 먹는 게 아니었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손님들은 새집 같다고 한다. 식구라고는 달랑 부부뿐이니 그럴 만하다. 어떤 이는 집안을 중간색인 뉴트럴 색상으로 단장해서인지 평온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화려한 것보다 편안한 집이 좋다. 바깥으로부터의 긴장을 풀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나만의 공간, 그것을 가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과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고 한다. 남녀평등인 요즘, 한국에서 남성용 화장품의 1년 매출이 1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많은 남자가 얼굴 가꾸기에 공을 들이나 보다. 그래서일까. 요즘 청년들은 참 말쑥하다.

나는 햇볕과 함께 하는 골프와 등산을 즐긴다. 아내는 내게 자외선 차단 크림을 권했지만, 나는 귀퉁이로도 듣지 않았다. 또 산행로 들머리에서 크림을 옹골지게 바르는 후배를 본보라고 해도 못 들은 체했다

얼굴에 분칠한 것처럼 허옇게 바른 모습을 보면서 ‘흠, 저렇게까지 처바르다니, 남자가…’라며 코웃음을 쳤다. 얼굴을 단장하는 일은 은근히 남자답지 않다고 여겼다. 아내가 끈질기게 권할 때도 나의 대답은 매번 됐어, 됐다니까~!’였다

귀찮기도 하고, 햇볕에 그은 남자의 얼굴이 아무런 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래도록 길게 괜찮은 젊은이일 것이라고 착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이 생생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요즘, 나의 얼굴에 불청객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검은 점은 물론, 드문드문 엷은 잡티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분이 야릇하다. 아이들이 기본 화장품을 정기적으로 주문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개봉도 하지 않고 쌓아 두었었다

얼굴을 단장하라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체한 셈이다. 서둘러 그 상자를 뒤적여 보았다. ‘참 가짓수도 많다’라며 애먼 화장품에 투덜대었다. 용빼는 재주 없다더니, 어느새 운동하러 나갈 때마다 나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슬쩍 챙긴다. 이제야 철드나 보다.  

선배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근엄하고 충실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부인의 강요로, 선배는 얼굴에 번진 검버섯을 서울에 가서 제거했단다. 10여 년은 젊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선배는 흐뭇해했다. 자분자분한 말씀이 정겹다. 근엄하고 묵직했던 선배의 가볍고 밝은 모습을 보니, 신선했다

선배를 존경했지만, 항상 어려워했는데, 달라진 그 모습에 내 마음의 문이 더 열리게 되었다. 외모는 물론, 누구와도 소통하는 내면의 너그러움을 가꾸어가는 선배가 참 멋지다.

차고 기둥 아랫부분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었다. 다가오는 봄에 외벽 전체를 페인트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못 본 체했다. 순간, 자외선 차단제를 무시했던 게 생각났다. 내년에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나는 차고 기둥을 지금 깔끔하게 칠하고 싶었다

기둥의 낡은 페인트를 스크래퍼로 긁어내었다. 다부지게 버티는 성한 페인트도 사포로 고르게 문질렀다. 쉽진 않았다. 차고의 테두리만 흰색으로 칠하였을 뿐인데, 집의 모양새가 반듯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페인트를 칠해 본 나에게 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샤워한 뒤, 면도를 위해 거울 가까이 섰다. 흰 눈썹 몇 가닥이 눈에 띈다. ‘아니, 내 눈썹에 언제 흰 페인트가 묻었지?. 숯덩이같이 굵고 짙은 눈썹이 나를 갈음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여름내 그을렸던 얼굴치고는 괜찮다. 면도 뒤, 저절로 영양 크림에 손이 간다. 뒤늦게 철난 거울 속의 내가 미소 짓는다.

나와 내 집을 가꾸는 것은 자기만족은 물론, 주변을 환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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