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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8 12:55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그녀의 향낭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193  

이 에스더(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그녀의 향낭

 
이번 고국 방문 길에 꼭 만나보고 싶었다
국제 소포를 몇 차례나 보내준 사람이다. 딸 아이가 J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인데, 과한 답례를 받는 것 같았다J의 친구 엄마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귀한 선물을 받곤 했다. 

얼마 전에도 정성이 담긴 갖가지 꾸러미들을 안았다. 딸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듯 윤기 자르르한 멸치가 종류대로, 그 지역에서만 난다는 명품 과자가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이렇게 맛난 멸치는 처음 먹어본다며, 온 식구가 둘러앉아 멸치를 과자 먹듯 하기도 했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고운 목소리, 뜻밖의 꽃다발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생글생글 웃는 J의 환한 미소도 꽃과 함께 와락 가슴에 안겼다. 연한 핑크와 연보라 색 장미들이 여린 백합을 감싸고 있다. J의 볼이 장미 꽃잎처럼 곱다. 

오랜 친구처럼 팔짱을 끼며 반갑게 맞는 J 엄마의 손은 어찌 그리 따뜻하던지.

곰소항으로 가자며 J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곰소항은 젓갈로 유명한 곳이란다. 단골집이 있어 젓갈은 물론 건어물도 사고 드라이브도 할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했다

갈치속젓 같은 이야기들이 가을 석양빛에 무르익어갔다. 딸들처럼 우리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 같았다. 곁에 다소곳이 앉아서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백합도 살포시 입을 열었다. 전주에서 곰소까지 가는 내내 나는 꽃향기에 취하고 사람 향기에 취해 있었다.

직장암 3기의 환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J 엄마는 밝고 건강해 보였다. 몇 해 전, J는 학기 중인데도 학교를 떠났다. 큰 수술을 받는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공부는 다시 하면 된다며 한국으로 돌아갔단다. 그런 대수술을 감당해내기에 J 엄마는 너무 여려 보였다. 단아한 모습이 백합을 닮았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통원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게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울에 갈 때마다 아픈 언니를 돌아보고 집안을 말끔히 정리해주며 다녔단다. 그 덕에 자신이 건강을 되찾은 것 같다고 수줍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가슴 어디쯤에 비밀스런 향낭 하나 지닌 듯하다. 편하고 행복하게 하는 향내가 그녀에게서 솔솔 풍겨 나왔다. 

생의 마지막 호흡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향이리라. 삶과 죽음의 처절한 경계에 서 보았기에 숨 쉬는 순간순간이 그저 감사하다고. 세상에 하찮은 만남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진심으로 우리의 만남을 기뻐하고 감사했다.

엄마의 건강이 회복되었는데도 J는 미국의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딸은 엄마를 떠날 수 없었고, 엄마는 딸을 보낼 수 없었단다. 이제 J는 엄마와 함께 학원을 운영하며 수의사가 되기 위해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J의 얼굴 어디에도 아쉬움이나 아픔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간 얼굴, 눈매 갖기가 어려운 나이인데. 엄마와 함께 힘든 길을 걸어오며 걸음걸음 쏟아놓았을 울음의 무게를 조심스레 헤아려 본다. 얼마나 깊고 정한 곳에서 눈물을 길어 올렸기에 그토록 말간 얼굴 가질 수 있었을까.

곰소항까지 가는 길이 많이 달라졌다고 그녀는 낯설어 했다. 하지만, 나는 새로 생긴 넓은 도로가 오히려 반가웠다. 앞으로 모녀가 나아갈 길이 새로 난 길처럼 편안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며, 부드럽게 달리는 차의 속도감을 즐겼다.

곰소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은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골목길 막다른 즈음에 자리한 그녀의 단골집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난처한 순간도 잠시, 어디서 튀어 나온 듯 주인이 나타나 가게에 불을 켜고 물건들을 다시 펼쳐놓았다. 그녀의 향기가 집으로 향하던 더벅머리 사내의 코끝을 끌어당겼던가 보다. 

서로 값을 치르려는 손길이 몇 차례 오간 후에야 우리는 맛깔스런 갈치속젓과 건어물을 양손 가득 들고 곰소를 떠나왔다.

어둠 속에 전주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녀는 전주의 전()자가 온전함을 뜻한다면서, ‘전주의 오늘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예로부터 전주에는 자연 재해가 없어 사람 살기에 좋은 고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온전한 고을 전주에 사는 그녀의 건강 또한 온전하게 회복되어 곱디고운 그 미소 잃지 않기를. 그녀를 위해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녀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 언니네 집에 봉사활동 하러 간다며, 추석 잘 지내란다. 멀리서 날아온 반가운 향기에 마음이 훈훈하다.

그녀의 향내가 가슴에 꽂은 브로치처럼 내게 꼭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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