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숙 시인(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여자의 고통
오래 전에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와 친한 친구가 이혼 직전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그 친구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나에게 상담을 받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을 약속하고 커피를 준비하면서 나는 기도했다. 한 여인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자리에 지혜로 인도해 달라고!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이 들어왔다.
딸의 친구는 미국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바람이 났는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로 이혼 직전까지 가본 경험이 있어 그 친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심리학적 이론에 의한 것이 아니고 70 평생을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심 어린 조언을 했을 뿐인데 다행히
딸 친구는 정중하고 진솔한 태도로 받아들이며, 끝내는 내 품에 안겨 울먹였다.
고맙게도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어차피 콩깍지가 낀 사랑은 길어야 3년이라고 한다. 처음처럼 끝까지 그 사랑을 불태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사실이란다. 그래서 한번 맺어진 인연에 의한 책임감 때문에 사는 부부가 대부분 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자들에게는 큰 고통이 있다. 하나는 출산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있고, 다른 큰 고통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오는 정신적 충격이 있다. 이
두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은 새 생명을 보는 순간 사라지지만, 남편의 외도는 영혼까지 메마르게 하는 고문이라고 한다.
남자들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를 빗대어 어떤 사람이 그럴듯한 유머를 만들었다. 모두 나열할 수 없어 4개국 여자들만 들어보자.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스페인 여자는 ‘너 죽고 나 죽자’하며 대들고, 자존심이 강한 독일여자는 스스로 자결을 생각하고, 영국 여자는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여자는
증거를 찾아 들이대며 가능한 대로 재산을 빼앗아 그 인생이 몰락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 여자가 참 잔인한 데가 있다. 나는 영국여자가 가장 지혜로운 여자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의 감정으로만 몰아가면, 극과 극으로 발전하여
살인에까지 이르게 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여자들이 남편의 외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내 남편만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결국 내 남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내 남편뿐
아니라 다른 집 남편들도 같다라고 생각할 때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다’혹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런 생각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가 엄청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얼마나 미숙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들인가. 누가 누구를 몰아 세우기보다는 시간과 거리를 두고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인간이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만
사고하고 행동할 때 결코 행복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내 속에 내 생각으로만 가득 채워놓으면, 다른 좋은 생각들이 들어갈 틈이 없지 않는가. 그 혼자의 외로움은
결국 우울증이나 치매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사람은 원래 서로 부대끼며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살아갈 때가 가장 좋을 때라고 한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너무 길게 보지도 말고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할 때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존경 받는 일이라는 ‘용서’를 통해 다시 손을 맞잡는
것이 지상천국으로 가는 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