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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9 08:50
[시애틀 수필-이한칠] 화려한 목도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504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화려한 목도리

눈뜨면 뉴스가 쏟아진다. 보수적인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을 좇아가려니 숨차다. 

요즘 나온 아이폰X는 홈 버튼이 없다. 충전도 무선이다. 암호를 처넣는 대신 슬쩍궁 보는 것(Face ID)만으로 전화기가 열린다. 

인물사진도 실제 스튜디오 조명 못지않고, 망원 카메라까지 갖췄다고 한다. 그런 특급 성능에 솔깃해지지만, 나는 전화기를 선뜻 바꿀 것 같지 않다. 때로는 변화를 위한 노력이 부담스럽다.

지금 사는 집을 사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뒤뜰 너머로 펼쳐진 경관 때문이었다. 남의 집이지만 아름드리 나무들, 바람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미루나무 등, 잘 정돈된 정원이 아름다웠다. 

그 널따란 초원에 집은 한 채뿐이어서 조용하고 평온했다. 다람쥐와 토끼, 갖은 새들은 그 집과 내 집을 제집인 양 넘나들었다. 집안 어디에서나 훤히 보이는 그 아름다운 경치는 어느새 여러 해를 넘기며 그렇게 내 것이 되었다.

 ‘위이잉~ ’ , 벌목용 엔진톱 소리가 요란하다. 모터사이클 발동 소리보다 더 혼을 뺀다. 벌목꾼은 나무 밑동에 톱날을 대더니 쓰러지는 쪽에 삼각형 모양의 홈을 파낸다. 드러낸 뽀얀 속살이 가엾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톱날을 밑동에 밀어 넣으며 양옆으로 절단하는 품이 노련하다. 그 절단한 틈새에 쐐기를 박으니 큰 아름드리 나무가 힘없이 쓰러진다.

아니, 싱싱하게 살아있는 나무를 저리 쉬이 쓰 러뜨리다니…. 예상 못한 벌목 현장을 내가 내려다보려니 당혹스럽다. 굴착기가 사방에 누워있는 나무기둥을 날름 집어 큰 트럭에 능란하게 내던졌다. 굴착기가 파낸 집채만 한 뿌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야말로 뿌리째 뽑힌 모습이 안쓰럽다.

 ‘웨에엥~’ , 나무 파쇄기가 낯선 굉음을 낸다. 아가리를 벌려 굵은 나뭇가지들을 파쇄기 안으로 마구 밀어 넣는다. 우지직, 부러지고 잘리며 버텨보지만, 삽시간에 사라졌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흔들어대며 아등바등하던 큰 뿌리들도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갔다. 파쇄기가 삼킨 나무와 뿌리는 앞쪽 주둥이를 통해 톱밥 같은 잔부스러기가 되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수십해를 인내하며 살아온 아름드리나무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어이가 없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떠나갈 때만 슬픈 줄 알았다.

몇 해 전, 한국에 계신 다섯째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다섯 형님 중에서 네 분의 형님을 앞질러 세상을 떠났다니 적이 놀라웠다. 고지식한 막냇동생을 위해 세상 살아가는 얘기도 자주 해주던 속 깊은 형이었다. 늦은 나이에 미국행을 결심한 내게 염려 대신, “다 잘 될거다”라며 믿음을 주었었다. 

예기치 못했던 형님의 소식은 연로한 부모 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과는 사뭇 다른 아픔이었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한순간에 한줌의 재가 되어 유골함에 모셔지는 그 과정이 어찌 그리 허망하던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우리의 삶과 아름드리 나무의 생이 똑 닮은 것 같아 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허허로운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어느새 축구장보다 훨씬 큰 벌판이 휑하니 펼쳐졌다. 먼저 떠난 형이 그립듯, 쭉 뻗어 있던 미루나무가 한동안 눈앞에 어른거렸다. ‘재잘재잘~ ’ , 미루나무가 서있던 곳엔 놀이터가 들어섰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떠난 자리에는 많은 집이 지어져 대단지를 이루었다. 갖가지 작은 정원수들로 조경도 그럴듯하다. 저기 사는 이들은 그 자리에 아름다웠던 큰 나무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겠지. 

그 주택 단지를 설계한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다행히 우리 집 담장 너머엔 집이 들어서는 대신 단지 내의 정원이 꾸며졌다. 그전의 경관과 다른 분위기이지만, 뒤뜰 밖이 훤히 트인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시나브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만들어 나아가려면 숱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아픔이나 어려움은 자신이 감내해야 할 몫이지 싶다. 새로운 주택단지 조성을 위해 나무베기는 필수였을 터였다. 전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지금은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다. 

관점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긍정적이며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언뜻 좋은 성정 같지만, 나는 변화를 위한 노력에는 안일한 면이 있다. 우리 집 뒤뜰 경치도 확연히 변했는데, 이참에 나도 무언가 변화해야 할 것 같다. 화려한 목도리라도 휘날리며 성큼 다가온 겨울을 맞이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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