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우리가 낚였다!
오징어가 그렇게 잘 잡힌다는 말에 솔깃하였다. 산과 호수, 바다가 어우러진 시애틀에 사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날 성싶었다.
철 따라 조개도 캐고 굴도 따러 가 보았지만, 오징어 낚시 얘기는 처음이었다. 큰애가 먼저 엄마를 위해 낚시에 같이 가 주겠다고 하니 중학생인 둘째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남편은 오징어가 풍년이라는 지역 신문기사까지 찾아 주었다. 주말, 특별한 계획이 없던 차에 오징어잡이를 가기로 온 가족이 모처럼 의기투합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들통 가득 오징어를 잡는 상상을 하며, 곡물 터미널 근처의 낚시터로 갔다. 부두에는 낚시꾼들을 위해 만든 다리 같은 긴 난간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부신 조명등까지 밝히고,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조명등 근처에 가보니 대여섯 사람이 에스키모 같은 방한복을 입고 대화도 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오징어 온다!” 누군가 모국어로 외쳤다. 그리고는 모두 말없이 오징어를 계속 낚아 올렸다. 그런데 우리도 남들처러 계속 낚싯줄을 던져 보았지만, 오징어가 한 마리도 안 걸렸다. 두어 시각이 흘러도 아무것도 낚지 못했다.
밤 아홉시가 좀 지났을 때, 옆 사람들은 벌써 규정된 십 파운드를 채웠는지 가자고 하더니 조명을 껐다. 낚싯대를 거두어, 바늘을 스펀지로 감쌌다. 꽃처럼 동그란 낚싯바늘이 우리 것과 달랐다. 낚싯바늘만 바꾸면 될 듯했다. 그날은 아무것도 낚지 못했지만, 바닷물 냄새가 좋았고 시애틀항의 불빛이 참 아름다웠다.
다음 날, 신문 기사에서 읽었던 다운타운의 낚시점에 갔다.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비바람과 파도를 이겨낸 것처럼 페인트칠이 벗겨진 가게의 외관이 한국의 장터에 있는 철물점 같았다. 3대째 가게를 지켜왔다는 주인의 구수한 입담에 야광 찌와 낚싯바늘을 몇 개 샀다. 오징어를 규정보다 2파운드 더 잡은 어떤 사람이 벌금을 천 불이나 물었다며 들통도 각자 준비하라고 귀뜸한다. <다있소> 가게에 가서 식구 수대로 들통도 샀다.
모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온 가족의 마음이 설렌 것이 얼마 만인가. 같은 집에 있어도 각자 방에서 따로 저녁을 보낸다. 우리는 색깔이 다른 예쁜 들통을 하나씩 흔들며 두 번째 낚시에 나섰다. 교우가 오징어를 많이 잡았다는 시애틀의 명물 <그레이트 휠> 근처로 장소를 바꾸었다. 대낮처럼 환한 대관람차의 불빛이 수면에 어리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불빛에 오징어들도 부둣가로 몰려오는가 보다. 지나가는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부탁했다.
초저녁인데 이미 많은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고 있었다. 큰애가 드디어 오징어를 한 마리 잡았다. “내 생에 처음 잡은 오징어야.” 목소리에 기쁨이 넘쳤다. 첫 손맛을 본 큰애의 낚싯대는 그 후로는 계속 잠잠했다. “잡았다!” 드디어 남편의 낚싯대가 응답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주변에선 쉴 새 없이 오징어를 낚아 올렸다. 옆에 있던 키 작은 아주머니는 키보다 훨씬 큰 낚싯대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거의 30초에 한 마리씩은 잡는 것 같았다. 아예 들통을 철책 바깥으로 묶어 놓고 오징어를 낚아대는 것이었다.
낚시를 시작한 지 두어 시각이 지나자 낚싯줄이 엉킬까 걱정스러울 만큼 낚시꾼들이 빼곡하게 몰려들었다. 아무런 재미를 못 본 둘째는 이내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담배 냄새도 나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우리는 베트남, 스페인, 한국, 중국 등 각국의 언어가 출렁이는 인터네셔널한 오징어 낚시터에서 슬며시 퇴각하기로 했다.
실망한 마음과 낚시도구를 차에 넣어 두고, 생선 튀김과 차우더로 이름난 가게에서 클램차우더를 먹으며 몸을 녹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여태 타보지 못한 대관람차(Great Wheel)를 태워 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불빛이 휘황한 관람차에 올라 시애틀항을 내려다보는 동안,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주변을 걸었다. 어딘가로 떠나는 여객선, 물에 일렁이는 불빛, 빌딩 숲에서 쏟아지는 불빛, 시애틀의 야경이다. 밤바다와 어우러져 예쁘지 않은 불빛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과 큰애는 각자 잡은 오징어를 들여다보며 무늬와 크기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말이 오징어이지 손바닥 길이만 한 것이 한치인 것 같았다. 그것으로 무얼 할까? 파전으로 결론이 났다. 같이 어딜 가기 싫어하는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작은 파전 석 장으로 태어났다.
겨우 두 마리, 우리가 오징어를 낚은 것이 아니라 오징어에게 우리가 낚인 것 같다. 나쁘지는 않았다. 비록 오징어를 잡지 못했지만, 가족이 함께 한 시간이 낚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