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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5 13:11
[시애틀 수필-안문자] 코스모스를 보내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933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코스모스를 보내며
 
시애틀에선 집 구경보다 그 집 정원을 돌아보는 일이 더 즐겁다. 담장이 없는 단독주택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원들은 마치 작은 공원 같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고요한 평화스러움도 처음엔 신기했다. 정원사가 만들어준 틀에 부지런한 주인의 손길로 다듬어진 정원은 눈에 띈다. 장식 나무로 된 고상한 정원, 잔디는 푸르게 빛나고 주변에는 온통 꽃으로 꾸며진 화려한 정원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어느 집 정원 한 귀퉁이에 색색의 코스모스가 만발하다. 틀림없이 한국 사람의 집일 게다. 진분홍, 연분홍, 꽃 분홍, 하얀색의 짙고 옅은 꽃송이들이 귀엽게 나부낀다. ‘여기에도 우리가 있어요. 우리도 이민 왔어요.’하는 것 같다. 

순간 엄청나게 큰 코스모스 다발을 안겨 주었던 친구의 얼굴이 꽃송이들 사이로 아련히 떠오른다. 그녀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나는 벼루고 벼른 끝에 신혼의 그를 찾아 나섰다. 가을풍경이 온 천지를 물들이던 코스모스의 계절이었지. 

새댁은 뒷동산에 갔단다. 주인이 가르쳐 준 셋방살이 신혼 방의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가 돌아왔다. 타는 듯 붉게 물든 노을을 뒤로한 채 코스모스를 가득안고 들어서던 친구가 깜짝 놀라며 눈이 똥그래진다. 남편은 출장 중이란다. 마음 놓고 된장찌개를 먹고 대추차도 마셨다.

뒷동산에 가면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있단다. 해마다 코스모스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데도 저희들끼리 피고 지며 신이난다고. 그런데 자기는 그놈의 코스모스를 모조리 꺾어버리고 싶단다.

 "아니, 왜~?" 놀라서 묻는 내게 친구는 심정을 털어놓는다. 첫사랑 같은 건 절대로 없다고 손 사례 치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숨겨 둔 일기장에 첫사랑의 비밀이 있었다나. 첫사랑은 이해하겠으나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 게다가 코스모스를 닮은 가냘픈 첫사랑의 여인은 코스모스를 아주 좋아한다고. 

속은 것 같은 마음을 달래려고 뒷동산에 올라가니 코스모스들이 자기를 비웃듯 춤을 추고 있었다네. 예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서 정신없이 꺾었는데, 버릴 수도 없고, 꽂아놓자니 남편이 첫사랑을 떠 올릴 테니 말이다. 그는 후후후 웃으며 “마침 잘 됐다. 엣다, 너나 가져가라.” 꽃다발을 던지듯 나에게 안겼다. 나는 좋아라, 푸대접 받던 코스모스를 덥석 안았다.

아, 이제는 볼 수 없는 착한 여자. 열심히 살았건만 남편의 사업이 몇 번이나 곤두박질했다. 빈털터리로 부인과 아이들을 남겨 둔 채 쫒기 듯 미국으로 갔다. 남편의 영주권을 기다리던 10여 년의 세월을 아무도 모르게 숨어버린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난 속에 심신이 지친 친구의 병이 시작될 때 가정이 합쳐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우 연결이 된 우리는 같은 미국의 하늘아래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서로 그리워하며 몇 번의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다가 끊기고 말았다. 

한 참 세월이 흐른 후, 한 친구로부터 슬픈 전화가 왔다.
 “아무개가 세탁소에서 일하다가 쓸어졌대. 간경화가 암이 되었다지 뭐야.” 그 친구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후 코스모스는 내게 그리움이요, 아픔이었다. 섭섭한 소식은 육 개월 후에 또 왔다. 이번은 흥분한 목소리다. “아무개 남편 재혼 했단다.” 친구는 계속해서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깊이 묻힌 설움을 하나님께 쏟으며 가족사랑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가.....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이별의 끝은 언제나 이렇게 허망한 것일까.

신이 꽃 중에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전해오는 코스모스! 한국이 고향인줄 알았는데 멕시코가 원산지란다. 억센 멕시코에서 이토록 가냘픈 꽃이 태어났다니. 

우리나라엔 1910년 외국 선교사가 씨를 갖고 와 파종했다고 한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씨가 떨어져 다음해엔 더욱 풍성하게 피고 지는 국화과의 꽃이다. 꽃말은 ‘소녀의 순종’이란다. 마치 친구의 일생을 말하는 것 같다.

코스모스들이 속삭인다. ‘우리는 산골짝에도 있어요. 없는 곳이 없어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도 있어요. 우리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예쁜 색으로 피우지요. 어디에서든지 나의 색을 잃지 않고 싱싱하게 피워내면 누군가가 위로받을 거예요.’ 꽃송이들은 미풍에 한들거리며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분홍 빛 노을이 살며시 내려와 꽃들을 감싸 안으니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꽃송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한 아름의 코스모스를 건네주며 피어나는 향기로 웃던 착한 그녀를 위함인가.

어느새 찬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코스모스를 보낼 때가 되었나보다. 설움도 아픔도 모두 걷어 가거라. 그리고 이듬해엔 더 맑은 얼굴로 가을 햇살 끌어안고 살랑살랑 춤을 추며 다가오는 그 모습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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